최근에 두 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하나는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만나서 현재까지 만나는 10년 지기 친구의 결혼식, 다른 하나는 5개월 전에 이직한 직장의 동료 결혼식이었다. 지금껏 가본 결혼식은 가족과 친척의 인맥으로 간 게 전부인데 순전히 나의 인맥으로 간 결혼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두 번의 결혼식은 공교롭게도 모두 어린 나이에 올리는 결혼식이었다. 내 친구는 당연히 동갑이고, 직장동료도 나보다 1살 많을 뿐이다. 2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것이니 꽤 빨리 하는 편에 속한다. 남의 결혼식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미래의 나의 결혼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이란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의 과정이다. 그래서 어른이 될 준비가 된 사람만이 결혼을 할 수 있고, 결혼을 해야만..
2020.01.17 - [일기] - 224. '다음에 보자'는 말에 대해 4년 전에 나는 '다음에 보자'는 말이 주는 불확실함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어느새 '다음에 보자'는 말만 내뱉고 실천하지는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2년 남짓한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나도 결국엔 '다음에 봅시다' 말만 되풀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선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현타가 찾아왔었다.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변명을 둘러대면서 과거에 했던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도 결국엔 무색해지고 말았다.
내 발 사이즈는 262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260 신발을 신기에는 작고 265를 신기에는 좀 크다. 이런 애매한 발 사이즈 때문에 항상 신발을 고를 때면 260을 사야하나 265를 사야하나 고민에 빠진다. 둘 중 어디에도 딱맞게 소속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 하기 마련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상황에 따라 260과 265신발을 둘 다 신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에 모든 일들이 나에게 딱 맞게 들어맞기는 힘든 일이다. 어떨 때는 자신을 욱여넣기도 해야하고 어떨 때는 헐렁하더라도 꾹 참고 걸어가야 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기묘한 징크스가 하나 있다. 비가 올락말락할 날씨에 외출하려고 할 때 내가 우산을 들고 나가는 날에는 비가 오지 않고, 들고 나가지 않는 날에는 비가 온다는 징크스이다. 안정적으로 생각했을 때 항상 우산을 들고 나간다면 최소한 손해볼 일은 없겠지만 나는 괜히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음으로써 나의 운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산을 들고 나간다는 말은 결국엔 걱정에 사로잡혀 있어서가 아닐까?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을 때,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자신의 낙관적인 직감을 한번 믿어보고 싶을 순간이 있다. 지금까지 성공률이 낮기는 해도 성공했을 때의 느껴지는 쾌감은 워낙 강렬하다.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건 평균대 위를 걸어가면서 균형을 잡는 일과 유사하다. 평균대에서는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몸의 오른쪽으로 기울여서 중심을 잡아야한다.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대화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어떤 방향으로 쏠려 있다면 그 반대 방향으로 대화를 당겨올 수 있어야 한다.이렇듯 대화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현재 대화의 방향성과 무게중심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 개개인별로 띠는 대화의 특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같은 주제로 대화한다고 한들, 사람마다 대화의 중심은 달라기지도 한다. 이처럼 대화를 하면서 고려해야할 점이 많다보니 나는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며 시행착오도 겪어보면서 균형 잡는 법을 체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