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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어느정도 가까워지면 항상 듣는 소리가 있다. 이제 자신에게 말을 편하게 놓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이런 소리를 내가 자주 듣는 이유는, 내가 유독 상대방에게 말을 놓기가 조심스러워서 만난지 한두달이 지났더라도 말은 여전히 존댓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이런 특별한 현상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오히려 나이가 더 어린 상대쪽에서 나를 더 불편해하거나 어색해 하기도 한다. 내가 남들보다 신중한 성격때문에 누군가와 '친해진다'의 기준치가 높은 편이기는 하다만, 사실 결정적인 이유를 꼽자면 남들은 친해지기 위해서 말을 놓는다면, 나는 친해지고 난 뒤에 말을 놓기 때문이다.
한국말에는 높임말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똑같은 의사를 전달하더라도 존댓말 여부에 따라서 상대방을 높이거나 낮출 수가 있다. 가부장적인 기조가 엄격했던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화였지만, 지금은 흐릿해졌기에 그에 따라 높임말과 반말이 가지는 의미도 조금 느슨해졌다. 그래서 오늘날의 높임말은 주로 처음 보는 사람이거나 아직 충분히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사용한다. 그리고 말을 놓는 '반말'문화는 꼭 상대방을 낮춘다는 의미보다는, 나는 당신과 친밀한 관계이고, 경계심을 풀었다는 부차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말을 놓음으로써 나와 상대방 사이의 심리적인 장벽이 허물어지고 정서적 교감도 한층 원활해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 해야하고, 상대방도 나를 파악할 시간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간이 나는 남들보다 꽤 긴 편이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그 사람을 최소 6개월 ~ 1년은 지켜보는 편이다. 따라서 말을 놓을 수 있는 시점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말을 놓는 행위는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성급한 접근일 수도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말은 충분히 친해지고 난 뒤에 놓게 되더라도 늦지 않다. 그리고 꼭 말을 놓지 않더라도, 상대방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물론 그 방법은 느리고 번거로운 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를 속전속결로 결정지으려고 한다. 나랑 친해질 사람인지 아닐지를 한두 번 만나서 판단내리고, 또 너무 빨리 친해지기만을 원한다. 그래서 괜히 어색한 사이를 풀어보고자 말을 놓으려 한다.
상대와 충분히 친해지고 나면, 말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놓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되어있다는 게 여태껏 경험해본 나의 인간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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