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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18. 개인주의자

4-so 2018. 1. 24. 02:39

드디어 개인주의를 주제로 글을 쓴다. 내가 꼭 쓰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블로그를 개설한 날부터 생각날 때마다 끄적이다보니 꽤나 양이 방대해졌다. 그래도 글을 쓰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내 머릿속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하나하나 파헤쳐보고, 나의 가치관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짙게 띠고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쓴 글인 "나는 왜 혼자일까?"에서도 밝힌 바 있었다. 사람에게 개인주의적 성향을 결정하는 DNA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후천적인 이유에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된것 같다(내가 어렸을 때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전혀 없었다).

다들 '개인주의자'라고 한다면 '이기주의자'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둘은 절대로 동의어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차이점을 들자면 개인주의는 '신념'에 관한 문제이고, 이기주의는 '성격'의 문제이다. 즉 두 용어가 규정되는 프레임 자체가 다르다. 개인주의적이면서 이타적인 성격도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자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 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주의자는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나 또한 그러하다. 또 개인주의자는 사회와의 소통을 끊고 혼자서 두문불출하며 지내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이 역시도 틀린 말이다. 개인주의와 비개인주의(집단주의)는 사회와의 소통 정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중에서 어느 곳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느냐로 결정된다. 개인주의는 사회의 판단보다 본인 스스로의 판단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먼저 아버지께 질문하기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쭈어보았다.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한 남자로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도 낳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에 올라서는 것'이라고 답하셨다. 아버지에게 삶이란 모두 '사회가 정의해주는 삶의 가치 척도'에 얽매여 있었다.

물론 1960년대에 태어나신 아버지와 90년대에 태어난 '나'가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특히 더 강한 농촌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차이는 당연할 것이다. 사실 내가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나이대의 어른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그들은 '개인'으로서보다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정체성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주의적인 시스템의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60,70년대를 급속도로 발전시키는데 집단주의적 성향이 크게 기여했다. 각 개인은 사회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사회는 개인의 희생을 거름으로 삼아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현재의 한국 사회는 거의 그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세대에게 남아있는 집단주의적 프레임이 젊은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결혼했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결혼에 대한 암묵적인 의무가 있었다. 지금처럼 결혼이 할까 말까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반드시, 마땅히 해야할 일이었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같은 개인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행사가 그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데 필요한 '입장권'을 얻기 위함인 것이다. 개인주의자인 나의 시각에서 사회에 떠밀린 개인의 행동은(더군다나 '결혼'같이 개인의 인생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행사마저도)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튼 지금의 엄마와 아빠가 그 당시에 만나 결혼을 하셨고, 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다른 집들도 다들 그만큼 싸우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어린시절 체감상으로는 자주 싸우셨다. 엄마와 아빠가 한집에 있으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정말 성격이 다르다는 점. 절대로 결혼해서는 안 될 두사람이 결혼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부모님 각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양립할 수 없는, 조화로울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두 분이 너무 원망스럽다. 누가 도대체 물과 기름같은 두 사람을 결혼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두 분 모두 당시의 '반드시 해야 할' 20대 성인으로서의 하나의 숙제'를 끝내고자 결혼을 결정했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도 너무 밉지만, 사회도 너무 미웠고 싫었다. '사회'가 우리 가족의 행복을 뺏어간 것만 같았다. 내가 자라오면서 이런 문제와 맞닥뜨릴때마다 스스로 마음먹은게 있다. (아마 이 시점부터 나의 개인주의 성향이 확립된 듯 하다) 바로 나는 절대로 사회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가 사회에 굴복하는 순간, 부모님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 삶의 의미는 모두 내가 규정하기로 했다. 남들도, 사회도 절대로 나를 정의할 수 없도록 할 것이다. '나는 왜 혼자일까?'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가 정의해주는 룰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벌을 받게 만들었다.

나는 나대로 살려고 한다. 말로는 참 쉬운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는 환영받지 못하는 집단인 것 같다. 집단의 룰은 무시하고 개인의 이득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치부된다. 개인주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환영받지 못하는 비주류 집단들이 있다. 사회의 주류 집단들은 비주류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 왜 우리 사회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 글을 쓴 이유도 개인주의를 옹호할 목적으로 썼다기 보다는, 개인주의는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유익한 해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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