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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하루키의 작품이다. '상실의 시대'를 워낙 인상깊게 읽었고, 동시에 하루키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이 생겨서였다. 마찬가지로 책의 선정 기준은 딱히 없었다. 유독 제목이 길어서 눈에 띄어 더 강한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았다. 일단 사람에게서 '색채가 없다'라는 표현도 신박했고, 그가 순례를 떠났다고 하니 아무 근거없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이 작품도 역시 재미있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와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하루키의 생생한 묘사와 스토리는 그대로였다.

과거에 '나'(다자키 쓰쿠루)가 친하게 지내던 그룹에서 추방당했는데, 당시의 '나'는 아무런 이유도 전해듣지 못했다. 그래서 16년이 지난 지금(소설에서의 현재 시점은 '나'가 36살임)에서야 그룹 멤버들에게 그 이유를 묻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를 소설에서는 '순례'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과정이 마치 추리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고도 긴장감이 흘렀다. 하루키는 독자를 너무 궁금하게 만들어서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소설의 전개

소설의 전개 방식이 흥미롭다. 현재 시점은 36살이지만, 학창시절과 그룹에서 추방당했던 시기인 16년 전의 시점을 현재 시점과 교차시키면서 전개된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재미있다. 쓰쿠루를 제외한 그룹의 친구 4명과 하이다는 모두 일본말로 특정 색을 지칭하는 말이다. 반면에 쓰쿠루는 '짓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처럼 쓰쿠루는 기차 역을 '짓는 일'을 하지만 자신만의 뚜렷한 색채는 없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쓰쿠루는 처음에 친구들을 찾아가기 꺼려했다. 그룹에서 추방당했을 당시에 쓰쿠루는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았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그 상처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제와서 그 상처를 다시 들춰낼 바에야 평생 모르고 사는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인 사라의 적극적인 도움과 권유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마음 먹고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나서기로 한다.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마다 쓰쿠루가 몰랐었던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쓰쿠루가 좋아하는 일이고, 직업으로 삼은 역을 만드는 일도 줄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차역은 기차가 손님들을 태우고 내리는 일시적인 장소이다. 기차는 할 일을 다하면 역을 떠나간다. 쓰쿠루의 인간 관계도 묘하게 이 모습과 닮아있다. 그를 스쳐갔던 학창시절의 그룹도 그랬고, 대학교때 알게된 하이다와, 또 어쩌면 사라도 그런 케이스가 될 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지막부에 핀란드에서 만난 구로에게 쓰쿠루는 사라에게 고백을 해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는데, 그 때 구로가 기차역으로 비유를 들어서 쓰쿠루에게 용기를 복돋아준 대목이 있다. 


"역을 만드는 일하고 마찬가지야. 그게,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져 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거야. 먼저 역을 만들어. 그 여자를 위한 특별한 역을. 볼일이 없어도 전차가 저도 모르게 멈추고 싶어 할 만한 역을. 그런 역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거기에 구체적인 색과 형태를 주는거야. 그리고 못으로 네 이름을 토대에 새기고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 너한테는 그런 힘이 있어. 생각해 봐. 차가운 밤바다를 혼자서 헤엄쳐 건넜잖아."(p.382)


아마 이 계기를 통해서 쓰쿠루가 진정으로 색채를 갖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고백의 성공여부는 소설에 나오지 않았지만, 항상 본인의 색채 없음을 단점으로 여겨온 쓰쿠루가 마침내 자신만의 색채를 발견하게된 희망적인 내용이니 사라도 이에 감명받았다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이라기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희망'에 가깝지만)해본다.

이 소설에서는 유독 쓰쿠루가 꿈을 꾸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시로와 구로가 등장하는 성적인 꿈부터, 하이다가 등장하는 꿈, 여성을 질투하는 꿈 등이 있다. 각 꿈들을 꾼 뒤에 소설의 전개 양상이 바뀌게 된다. 특히나 시로와 구로가 등장하여 관계를 가지는데, 공교롭게도 시로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주장하고, 이 때문에 쓰쿠루는 그룹에서 추방당하게 된다(물론 쓰쿠루는 그 사실을 16년 뒤에 알게 된다). 소설에서 언급되었다시피, 그것이 비단 꿈일지라도 본인과 시로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서로 만나 그도 모르는 사이에 시로를 범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 내면의 어두움

쓰쿠루는 그룹에 속해 있는 시절부터 시로를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룹원끼리는 이성의 감정을 끌여들여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따라서 그 감정은 적절하게 표출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억눌리게 되었다. 이것이 시로가 등장한 성적인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시로가 쓰쿠루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살해 당한 것도 모두 쓰쿠루 자신 때문이라고 의심한다. 그 외에도 하이다가 자신의 곁을 떠난 이유가 본인이 꾸었던 불결한 꿈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것에서 미루어 보아 쓰쿠루는 자신 안의 어둡고 음침한 구석이 숨겨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어두움은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상상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라는 상상이 자신을 괴롭히고 깊은 수렁에 몰아 넣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어둠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과장된 해석을 해보자면, 하이다는 일본어로 회색인데 이는 검은색과 흰색을 섞은 색이다. 여기서 검은색은 쓰쿠루 내면의 어두움이다. 흰색은 그 반대인 쓰쿠루의 밝고 건강한 면모이다. 즉 하이다(회색)라는 인물은 쓰쿠루의 이런 상반된 두 모습이 동시에 투영된 인물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이따금씩 쓰쿠루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 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된 건지도 모른다.(p.88)


나라는 인간 안에는 뭔가 뒤틀린 것, 비뚤어진 것이 잠겨 있는지도 몰라, 하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시로가 말한대로 나한테는 보이는 얼굴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면의 얼굴이 있을지도 모른다. 늘 어둠속에 감추어진 달의 이면처럼. 나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한 채 어딘가 다른 장소에, 다른 시간성 속에서 정말로 시로를 범하고 그녀의 마음을 깊이 베어 찢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비열하게 힘으로 눌러서, 그런 어두운 이면이 언젠가는 표면을 능가하여 그것을 완전히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른다.(p.270)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 따위 쓰쿠루는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징적으로 그는 유즈를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도대체 어떤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지 쓰쿠루 자신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유즈(시로) 안에도 그녀만의 은밀하고 짙은 어둠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어딘가에서, 아주 깊은 지하의 어딘가에서 쓰쿠루 자신의 어둠과 서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유즈의 목을 조른 것은 그녀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의 바람을 서로 이어진 어둠 속에서 들었을지도 모른다.(p.375)

쓰쿠루 내면의 어두움과 그로 인한 고뇌가 드러난 대목이다. 


3. '미결'의 의미

이 소설에서는 유독 밝혀지지 않는 '미결'의 사건과 쓰쿠루가 꾸었던 꿈이 많이 등장한다. 시로와 구로가 같이 등장한 꿈, 하이다가 얘기해준 본인 아버지의 일화와 하이다가 쓰쿠루 곁을 떠난 이유, 무엇보다 쓰쿠루가 과연 시로를 실제로 범했을지도 모두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 이는 쓰쿠루가 스스로 품었던 내면의 어두움처럼,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의심과 어두움을 품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또, 쓰쿠루가 핀란드에 가서 구로와의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서로의 속마음에 대해서 털어놓게 된다. 그런데 구로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므로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인데, 그녀의 남편 하이타이넨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독자가 둘 만의 밀회를 몰래 엿보고 있는 듯한 설정인데, 이 역시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래도 그는 시로를 용서할 수 있었다. 그녀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오로지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하고 견고한 껍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급박한 위기를 눈앞에 두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 고작이라 수단을 가릴 여유는 없었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결국 도망칠 수 없었다. 폭력을 감춘 어두운 그림자가 집요하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 구로가 '악령'이라 불렀던 것.(중략)(p.431)

내면의 어두움은 쓰쿠루뿐만 아니라, 시로 또한 깊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쓰쿠루와는 달리 시로는 결국 그 어두움에 굴복당했다. 쓰쿠루는 색채가 없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몸의 중심 가까이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1년 내내 녹지 않는 동토의 중심부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이 가슴의 통증과 숨 막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기 안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태 그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 아픔이며 올바른 숨 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p.388)

사람이라면 저마다 가슴속에 이런 응어리가 존재할 것이다. 아마도 쓰쿠루가 품고 있는 이 응어리는 본인의 색채없음에 대한 약점 의식일 것이다. 그를 만나는 사라는 이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쓰쿠루도 구로를 만난 뒤에서야 이러한 응어리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 응어리르 녹이기 위해서 사라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하게도 나의 내면의 어두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 또한 쓰쿠루처럼 내면의 어두움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 넣을 수도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각자의 마음속에 어두운 방, 관계자외 출입금지인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선 다른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런 공간 자체를 부정하고 폐쇄하기보다는 얼마나 잘 다스릴 수 있는지, 그 어두움이 현실 세계의 공간에는 비집고 나올 수 없도록 출입문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일이 아닐까. 그 방 안에 갇혀버리면 출구가 어디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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