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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완독했다. 대략 420페이지 정도로 꽤나 긴 분량이었지만, 소설이 워낙 재미있고 쉽게 술술 읽혀서 지루하다는 기분은 못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약 40분간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평소에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고, 그중에서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이 가장 유명한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왜 하루키가 유명한 작가인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번역을 거치긴 했지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 감정들을 뛰어나게 표현한다. 그것도 아주 어렵고 현학적인 수식이 아닌, 누구라도 쉽게 와닿는 그런 묘사이다. 아마 이런 뛰어난 묘사들이 내가 이 두꺼운 책을 쉽게 읽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소설 중간중간에 피식하게 만드는 유머가 있다. 예를 들면 '나'(와타나베)가 기숙사에서 만난 룸메이트(일명 돌격대)의 성격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쩜 이렇게 생생하면서도 재밌게 캐릭터를 그려내는지 감탄했다. 이렇듯 소설의 초반부는 각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고 후반부에는 그런 성격들이 서로 어떻게 충돌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가 흥미로웠다. 특히 '나'가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과 그때의 태도에 주목할만 하다.

인상 깊었던 점은 소설에서 죽게 되는 인물들이 있는데, 죽는 모습의 묘사만큼은 단호하고 간결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날 OOO은 죽었다' 이런 식이다. 그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그 인물의 죽음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말이다. '나'의 절친인 기즈키의 죽음도 그렇고, '나오코'의 죽음, '나가사와'선배의 연인 하쓰미의 죽음이 그렇다. 다른 모습의 묘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면서, 소설의 중대한 사건인 인물의 죽음은 무서우리만큼 간결하고 단호하게 묘사한다. 어쩌면 그 시대의 상실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임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초반부에 언급된 '죽음은 삶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한게 아닐까.

사실 마지막까지 나는 내심 나오코의 완쾌를 바랐고, 결국은 와타나베와 같이 살면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날 줄 예상하고 있었다('예상'이라기 보다는 '희망'이라는 말이 더 알맞지만). 그런데 나오코는 죽어버렸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죽기 직전까지도 나오코의 상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왜 나오코가 죽음을 택했는지도 이해가 안 갔다. 그녀의 곁엔 와타나베와 레이코라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뒤에 부록으로 달려있는 해설집을 읽어보니 죽기 직전에 와타나베가 나오코에게 전화를 걸어 둘이서 같이 살자는 말이 자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나오코는 죽은 남자친구인 '기즈키'와 와타나베 이렇게 삼각관계로 지속되고 있었는데, 와타나베가 전화로 기즈키를 지워버리려고 하자 삼각관계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여러가지 해석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나에게 '쿵'하는 느낌을 주었다. 소설을 다시 상기시켜보니 정말 그랬다. 나오코가 요양원에 가게된 계기도 그랬고, 그 이후에 나오코에게 보낸 편지도 그랬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의 자리를 본인이 대체하려고 했고, 이것이 조금씩 나오코의 마음을 나오코의 마음을 갉아먹은게 아니었나싶다. 사람은 이래서 눈치가 빨라야하고, 남의 여자는 탐내서는 안되는 법인가보다.

이 책에 푹 빠져있다보면 자연스럽게 간과하게 되지만, 사실 정신차리고 보면 주인공 '와타나베'와 그를 둘러싼 인물 사이의 관계는 결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소설에서 현실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또한 비상식적이긴 하다만, 그야말로 충격적이고 자극적이다(아마 그래서 내가 이 책에 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혹은 일어날 수는 있더라도 내가 그걸 알 리가 없는 상황을 작가만의 작품 세계속으로 끌어들여서 적절하게 재단하고 보충하고 다듬는게 작가의 역할이고 그게 문학이기 때문에 유효한 것 같다.



다음 문장들은 소설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대목이다.

죽은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p.46)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의식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 삶의 과정에서 스멀스멀 죽음이 엄슴해오고 있다는 말. 소설에서 '죽음'과 관련된 사람은 모두 저 명제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내 마음속에는 딱딱한 껍질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같이 나는 말했다.(p.51)


-> 와타나베의 생각인데 어쩐지 나에게도 해당하는 문장같다는 기분이 든다.


"난 굉장히 완벽한 걸 원하고 있거든. 그래서 어려운 거야."

"완벽한 사랑을?"

"아니, 아무리 내가 욕심쟁이라지만 거기까진 바라지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거야.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자기에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이야, 그러면 자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야.'하고 내밀겠지. 그러면 나는 '흥, 이런 건 이젠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밖으로 휙 내던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이야." (중략)

"난 상대방 남자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 '알았어,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곧 딸기 쇼트케이크가 먹고 싶지 않게 되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p.120)

-> 미도리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를 짐작케하는 대목. 어쩜 이렇게 제대로 표현했을까 ㅋㅋ 읽었을 때 나 또한 황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꽤나 유명한 것 같더라.


"그래서 말이야. 때때로 나는 이 세상을 둘러보면 정말 치가 떨려. 어째서 이 사람들은 노력이란 것을 하지 않을까. 왜 노력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할까 하고 말이야."

(중략) "제가 보기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악착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그건 노력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일 뿐이야. 내가 말하는 노력이란 그런게 아냐. 노력이란 좀 더 주체적이고 목적을 가지고 하는거야."

"가령 취직이 결정되어 다른 사람들은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한다든가 그런 거 말인가요?"

"그래. 그런거야."...(p.292)

-> 나가사와 선배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 '노동'과 '노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나 역시 읽고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둘 중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노동'을 해놓고 '노력'이라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얕은 문학적 소양때문에 이런 좋은 작품을 두고도 별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는 하다만, 반대로 뭣도 모르는 내가 읽어봐도 좋은 작품인 것 같다. 두꺼운 책이지만 쉽게 읽히면서, 다 읽고도 계속 생각해볼 여지가 남는 그런 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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