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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부터 엄마, 아빠인 사람은 없다. 엄마든 아빠든 모두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마치 태생부터 그런 사람인양 행동한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부과한 역할과 정체성이지만 그들은 역할의 노예가 되어서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스스로 회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역할을 착취하고 있는지 말이다. 

엄마로서의 역할은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가족들은 챙기는 일이다. 그럼에서 가정에서의 엄마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물론 아빠나 자녀로서의 역할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정이 돌아가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을 꼽자면 엄마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늘 엄마를 찾게 된다. 배가 고플 때, 집이 어지러울 때, 빨래를 해야할 때, 설거지를 해야할 때.... 등 이밖에도 다 적을 수 없을만큼 수많은 역할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엄마의 역할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을까? 마땅히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 역할들을 짊어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해야하는 일로 당연시 여겨지는 일들을 조금씩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내가 시행한 작은 반란이었다. 엄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이 반란의 동기를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건 나의 작은 행동을 통해서 나는 엄마가 짊어지고 있는 역할의 짐을 덜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엄마가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 엄마 김OO씨는 '엄마'이기 이전에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각자가 맡은 책무를 배임한 채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내가 의무로부터의 해방을 옹호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마다 생각하는 '엄마가 이행해야할 책무'의 경계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의 기다란 수직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한쪽 끝을 '반드시 나 혼자서 해야할 영역', 반대쪽 끝은 '반드시 엄마가 해야할 영역(애초에 '반드시'라는 라벨링도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이라고 했을때 누군가는 정 가운데가 경계선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다른 누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상태가 경계선이라 생각한다. 만약 엄마가 생각하는 경계선과 다른 가족이 생각하는 선이 서로 만나지 않는다면, 그 사이에 있는 영역들은 서로에게 떠넘기기가 되는 셈이다. 때문에 경계선은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지점으로 타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도 유동적으로 경계선을 바꿔야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는 있지만, 성인이 된 시점에서는 내가 담당해야할 몫을 늘려나가야 한다. 어린 시절의 '관성'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나의 어린 시절때 엄마는 내가 찡찡대기만 하면 뭐든 해결해주고 할 일을 도맡아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엄마는 이런 '민원 해결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엄마에게도 분명 하기 귀찮고 힘든 일일수도 있다. 나에게도 성가신 일은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떠넘기는 행위는 비열하다. 나는 과연 경계선을 잘 설정했는지, '엄마'라는 정체성을 간사하게 악용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반성하면서, 그럼으로 내가 한층 성숙해지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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