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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1일 차(4월 21일)

아침 6시에 기상 나팔 소리가 들려오면서 잠에서 깬다. 군필자들이 왜 그렇게 이 소리를 극혐했는지 단 3초만에 깨달았다. 이 소리는 지옥의 소리이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집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군대에 있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같이 머리를 빡빡 민 사람밖에 없다. 이게 정녕 나에게 일어난 일인가 싶다. 믿을 수가 없다. 꿈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553일 중에서 2일째가 시작되는 날이다.

일어났을 때의 심경을 가장 잘 대변하는 짤...

잠은 나름대로 설치지 않고 바로 잠들기는 했다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그런지 몸과 정신이 찌뿌둥하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시 방송이 나온다. 소금물 가글하고 온차 섭취하고 세면세족을 하라고 하랜다. 일단 첫 날이어서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시키니깐 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훈련소에는 전우조라는 시스템이 있다. 전우조는 생활관 밖에 물을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선 본인 포함 최소 3명이상이 그룹을 이뤄서 이동해야만 한다. 지키지 않을 시 엄청 혼난다. 아마도 병사들의 돌발행동을 막기 위한 방지책인 것 같다. 전우조는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시스템인 건 분명하나 지금 나에겐 그러한 옳고 그름을 따질 처지가 못 된다. 나는 지금 군대에 있으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일어났을 때 당시의 심정을 지금 다시 상기해보자면... 단언코 내 인생 살면서 가장 끔찍하고 좌절스러운 기분 1순위에 꼽힐 것이다. 그때 그 기분은 말로 도저히 표현이 안된다. 그런 일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이어야 한다. 일어나서는 침대와 모포(군대에서 쓰는 초록색 이불)를 정리해야한다. 모포란 물건도 보온성은 그렇게 좋지도 않으면서 무게는 무겁고 접는 방법도 혼자서 접기 매우 까다롭다. 어떻게하면 군인들을 최대한 성가시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발명품으로 고안된 물건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오늘은 신체 검사를 하는 날이다. 이 사람이 몸에 이상이 있어서 군인이 되기에 적합한지를 검사한다고 보면 된다. 검사는 어제 입대했던 입영심사대에서 진행한다. 때문에 어제 건넜었던 그 육교를 한번 더 지나게 된다. 아침을 먹고 일찍 훈련소에 나섰다. 내가 입대했음에도 사회는 아직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원래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나 하나 사회에서 사라져버린다고 해서 큰일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괜히 심술이 난다. 정말 이토록 조용해도 되는 건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는 건 사회에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마 이 당시의 내 정신상태가 썩 정상은 아니었으리라 추정된다.
아무튼 갖가지 상념들을 품은 채로 육교를 지나서 입영심사대로 왔다.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신체검사 도우미로 뽑혔다. 그래서 나에겐 사람들의 체온을 측정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매우 간단한 일이다. 체온계를 들고 사람들의 이마에 갖다대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측정해야할 사람의 수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인원이 대략 300명이나 되다보니 2시간 넘게 측정만 했다. 그래도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300명의 전국 각지에서 온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보는 일은 꽤 재밌었다. 그리고 입대 초기에는 훈련병끼리 전우애(혹은 동병상련)가 매우 끈끈할 시기이다. 체온측정을 하고나서 지나갈 때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 같은 인사를 들으면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 이런 의미를 내포하지만) 군인간의 전우애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오전내내 신체검사를 받고나서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보다 먼저 입소해서 훈련을 받고있는 훈련병들을 보았다. '저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가는구나', 정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훈련소에서는 내가 가장 늦게 들어왔으니 가장 늦게 나간다. 과연 내게 5주 뒤라는 시간이 오긴 오는걸까..?(그치만 놀랍게도 벌써 10주나 지났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보급품을 열심히 받았다. 어제는 생활복 상하의와 속옷, 세면용품, 슬리퍼를 받았고 오늘은 방상외피와 장갑, 운동화를 받았다. 앞으로 2주 동안은 보급만 지겹도록 받게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내 세금이 모두 이곳으로 왔구나...
이곳에서는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진다. 정말 사회에서의 24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는걸까? 군대라서 느리게 가는 걸수도 있고 아침 6시에 일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회에선 늘 새벽 3, 4시에 자서 12시에 일어났으니 생활패턴이 6시간 앞으로 당겨진 셈이다. 아무튼 지금은 졸리고 피곤하다.

-입대 2일 차(4월 22일)

입대 2일차다. 현재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어야만 한다. 생각을 많이 하면 시간이 안 간다. 어차피 군대는 이성적인 체계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나도 이성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이제부터 몸과 정신을 따로 분리해내야 한다. 정신은 잠시 5주간 다른 곳에 맡겨두고 몸만 이곳에서 움직이면 된다.
군대에도 생활기록부란 게 있다. 거기에 나의 가족, 친구,학교, 이성 관계 등 나의 신상에 대한 잡다한 정보를 기입해야 한다. 또한 군복무 기간 동안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다짐같은 것도 적어야 한다. 이런 일은 중고딩 때 이후로는 다시 안 할 줄 알았는데 왜 또 다시 해야하는지 약간 현타가 온다. 아마 군대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돌려놓기 위함이라고 추정된다.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중대장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서 방송하실 때마다 졸립다. 라디오 DJ를 하시면 잘 어울리실 것 같다.
오늘은 수건과 각종 옷을 접는 법을 배웠다. 옷은 다 각을 맞춰서 접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 동글동글하게 말아서 접는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사회에서도 나름 유익하게 써먹을 지도 모른다.
생활관 복도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읽을까 말까 고민 중이다. 여기까지 와서 책을 읽을 만한 멘탈일지는 모르겠다. 책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올 것 같다.
오늘 오전에는 인적성검사 같은 걸 봤다. 문항들은 대체로 평이하거나 조금 까다로운 것도 있었다. 대기업 입사를 위한 인적성검사를 보는 것 같았다. 오늘은 하루종일 실내에만 있어서 지루했다. 시간이 안 간다. 입대후 2주 동안에는 적응기간이라서 훈련은 안하고 이렇게 실내에서만 지낸다고 한다. 뭐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입대 3일 차(4월 23일)

오늘은 드디에 총을 받았다. 앞으로 5주간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다녀야 할 총이다. 6자리 총기번호도 외워야한다. 이것도 못 외우면 엄청 혼난다. 총은 내가 화장실은 가든, 밥을 먹든, 어디로 이동하던 간에 항상 내 몸에서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일러주셨다. 아직 나에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몇 킬로그램짜리 쇠붙이긴 하지만.
그 외엔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갔다. 오늘도 실내에서 간단한 교육 몇 가지 듣고 하루가 끝이 났다.
저녁에 후식으로 팥빙수가 나왔다. 날도 쌀쌀한데 빙수도 그 자리에서 바로 다 먹어야했기 때문에 머리가 띵해지는 걸 참아가면서 꾸역꾸역 먹었다. 부식으로는 딸기몽쉘과 콜라가 나왔다. 딸기몽쉘은 군대에서만 파는 한정품이라는데 특별히 맛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일반몽쉘에 딸기 맛 살짝 나는 정도였다. 콜라에 들어있는 카페인 때문인지 밤에 잠을 한 시간 동안 못 자고 뒤척였다. 그래서 12시쯤 겨우 잠에 들었다가 1시 반 쯤에 불침번때문에 잠에서 깼다.
불침번은 1시간 30분동안 생활관 복도에 서있으면서 특이사항을 점검하거나 유동인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말은 좀 거창한데 실제론 대부분 서있으면서 멍 때리리는 시간이다. 엄청 지루하기는 한데 꼼지락거리면서 잡생각하고 운동하면 시간은 나름 잘 간다. 그렇게 3시에 불침번을 마치고 다시 잠에 들었다.
군대에 있으면 자연스레 나는 누군가,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자아성찰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이런 생각들은 조금 위험한 것 같다. 이런 성찰 과정의 끝에는 불가피하게 개인의 독립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는데 이는 군대의 가치관에는 완전히 대척되기 때문이다. 군대는 사람을 개개인으로 보지 않고 군대라는 단체에 종속된 부속품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깊이 하는게 딱히 좋지는 않다.

-입대 4일 차(4월 24일)

어제 불침번을 해서 수면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많이 피곤했다. 오늘부터는 아침 점호를 야외에서 진행한다. 요즘 날씨가 다시 추워져서 밖에 나갈 때 고생 중이다.
오늘은 몇 가지 군가를 배웠다. 육군가, 육군훈련소가, 전우 이렇게 3가지를 배운 것 같았다. 오랜만에 노래를 배우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노래를 배우는게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급받은 전투복에 명찰을 바느질을해서 달았다. 바느질을 마지막으로 했던게 중학교 가정시간인 것 같았다. 그때는 나름 바느질 괜찮게 했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하려니 뜻대로 되질 않았다. 중간에 자꾸 실이 꼬여서 잘라내고 다시 잇기를 반복했다. 대략 두시간 동안 열심히 박았다. 오후에는 또 어떤 교육을 받고 하루가 끝이 났다.

-입대 5일 차(4월 25일)

오늘은 토요일이다. 입대한 뒤 맞이하는 첫 주말이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1시간 늦게(7시) 일어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겨우 한 시간 뿐이었는데도 정말 달콤했다. 주말이라서 평일보다 조금 널널하기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식당 청소를 했는데 2시간 동안 하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오늘 입대하고나서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콜렉트콜 전화로 약 10분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나는 적응 잘 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반갑게 느껴진다. 내심 울지 않을까 생각이 많았었는데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별다른 고생을 안해서 그런가 싶다.
내일 하루는 널널하기를 바라본다.

-입대 6일 차 (4월 26일)

일요일이다. 군대에서 매주 일요일에는 종교 활동을 한다. 군대에서 제공하는 종교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이렇게 4가지이다. 나는 원래 종교가 없기 때문에 아무 선택도 안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훈련소에서는 무조건 종교 하나는 선택해야 된다더라. 종교의 자유 여건 보장도 좋지만... 무교인 사람들의 자유는 보장 안해주는 건가요? 아무튼 원래대로라면 본인이 선택한 종교의 장소로 가서 각각의 행사를 진행하게 되지만, 코로나 문제 때문에 좁은 공간에 다수 인원이 밀집되는 일을 피하고 있다. 따라서 안정되기 전까지는 그냥 생활관에 앉아서 종교별로 나눠주는 유인물 읽어보는 걸로 행사가 대체되었다. 나로서는 다행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훈련소 종교행사가 재밌으니깐 놀고오라는 사람들의 후기는 체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유인물과 함께 부식으로 제공되는 초코파이와 사이다를 먹었다. 사회에서 초코파이는 수도 없이 먹어봤지만 군대에서 먹는 초코파이는 뭔가 다른 게 확실이 있는 듯 하다. 아마도 먹는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어서 맛 보정이 되는 듯 하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도 뭔가 자잘한 일을 하기는 했다. 정말로 쉬기만 하는 주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대 7일 차(4월 27일)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다. 입대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전에 내가 민간인이었다는 사실이 아득히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군대라는 공간이 나와 사회사이의 거리를 멀찍이 떼어놓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이제 본격적으로 정신전력 교육이 시작된다. 이름은 거창한데 쉽게 말하자면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확립하는 교육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왜 소중한 시간을 바쳐가면서까지 나라를 지켜야하는지, 군인은 민간인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북한의 체계와 군사 작전등에 대해서 배우고 나중에는 시험을 치뤄서 합격 여부도 가른다. 물론 조금만 공부하면 대부분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다. 이제 내가 군인으로 개조되는구나 싶었다.

-입대 8일 차 (4월 28일)

오늘은 처음으로 전투복을 입고 단독군장을 하는 날이다. 단독군장이란 전투복과 전투화 입고 장구요대와 방탄헬멧 착용하고 총기까지 소지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방독면 가방과 군장까지 매면 완전군장이 되는 것이다. 평소 훈련할 때는 단독군장만 하고 마지막에 행군할 때만 완전군장을 한다.
시간이 흘러 익숙해진 지금에서야 생활복 상태에서 단독군장하는데 3분밖에 안 걸리지만 그날은 처음 해보는 날이었다. 전투복 입는 것도 영 어색하고 전투화 끈 묶는 법도 이게 맞는 지도 모르겠고 장구요대 사이즈도 안 맞고... 20분 넘게 장비들과 씨름을 했고 아무튼 총체적 난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단독군장을 다 마친 상태가 되니 온 몸에 치렁치렁 뭔가가 매달려있는 느낌이 이상했다. 이걸 앞으로 4주동안 해야하다니 막막했다. 어색함은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도록 맡겨두어야 할 것 같다.
총기제식은 쉽게 얘기해서 총을 잡거나 드는 방법이다. 총을 그냥 잡으면 되지 무슨 방법이 있냐 이렇게 생각이 들겠지만(내가 그렇게 생각했었다)정해진 방법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내가 배운 총기제식은 세워 총, 앞에 총, 그리고 경례하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하는지 설명이야 할 수 있겠지만 유튜브에 자세히 나와있을테니 생략하겠다. 잘 설명할 자신도 없고 솔직히 얘기하면 지금 거의 다 까먹었다. 제식훈련 당시를 떠올려보자면 꽤나 어려웠다. 그냥 총을 들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정확한 절차와 동작과 동선이 있다. 이 3가지가 모두 일치해야 한다. 게다가 3kg이 넘는 총을 계속해서 올렸다 놨다 하니깐 팔도 저린다. 내가 군대에서 느낀 첫번째 고난이었다.
훈련을 마치고난 뒤에는 처음으로 px에 다녀왔다. px는 군부대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물건들은 면세에 가까운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다. 여러가지 물건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관심있는 물건은 오직 먹을 것 하나다. 우리가 살 수 있었던 품목은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아이스크림이었다. 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게 과자인데 이곳에서는 어찌나 반갑던지... 게다가 가격도 사회에서의 절반이나 1/3수준밖에 안된다.(하지만 병사들 월급으로는 이마저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각자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들 하나씩 사와서 생활관에서 동기들과 나눠먹었다. 군대에서 느꼈던 몇 안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px에 갔다온 뒤에는 사회에서 갔고온 짐을 집으로 택배로 보내는 시간이었다. 다들 이 시간에 부모님 생각나서 울고 부모님도 이 택배 받으시면 운다고 하시더라. 입소하던 날에 입고왔던 옷들과 가방을 상자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으려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뭐라도 적어서 보내려고 했는데 눈물이 흐를까봐 결국 별 내용 못 적고 보내고 말았다. 나중에 엄마한테는 갑작스럽게 편지 쓰느라고 뭘 적어야할지 생각이 안 났다고 둘러댔다.

-입대 9일 차~11일 차 (4월 29일 ~ 5월 1일)

이 기간에는 딱히 별다를 일이 없었다. 대부분 실내에서 정신전력 교육 받는게 전부였다. 금요일에는 시험을 봤는데 역시나 배운 내용 충실히 적으면 통과시켜주는 정도였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생활관 동기들과 꽤 친해졌다는 거다.
이곳에 있으면 사회에 있을 때보다 내 자신에 대해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 전에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살아왔는데에 비해 이곳에서는 다른 지방에서 다른 생활과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내가 남들보다 무엇이 특별하고 부족한지를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은 인생에서 흔치 않다.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과 최대한 많이 얘기하고 생활해보면서 내 행동이나 생각에서 부족하거나 개선할 점이 있으며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입대 12일 차 ~ 13일 차 (5월 2일 ~ 5월 3일)

이번 토요일에는 정말로 일과가 없었다. 방송으로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자도 된다고 말해줬다. 훈련소에서는 할 일이 없더라도 누워있으면 엄청나게 혼난다. 그래서 안 들키도록 요령껏 기대서 자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잠이 안 와서 생활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서 마피아게임을 했다.

일요일에는 입대한 이후 처음으로 비가 왔다. 그래서 아침점호는 실내에서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침 먹으러 이동할 때 비를 피하기 위해선 판초우의를 입어야한다. 판초우의는 방수 재질의 천을 머리와 온 몸에 뒤집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정말 군대에 와서 두 번째로 불쾌한 기억이었다. 우선 판초우의는 크기부터가 커서 착용하기에 거추장스럽고, 접는 방법도 귀찮고 무엇보다 사용 후에 건조를 제대로 안했기 때문인지 습기를 머금은 특유의 그 구린내가 난다. 이걸 다 참고서 착용하고 빗속을 걸어가면 물이 샌다! 우의긴 우의인데 방수가 안되는 우의인 것이다. 지난 몇 백 기수들이 계속 물려쓰다보니 방수기능이 사라졌다고 한다. 내 세금이 어디로 간 것일까..
내일부터는 3주 동안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제 진짜 시작인 셈이다. 난 그저 다치지 않고 주어진 과정 모두 열심히 해내는게 목표이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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