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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부터 수료까지 있었던 일들과 그에 따른 나의 심경 변화를 서술했다.

 

우선 군대이니 만큼 지나치게 자세하거나 보안에 민감한 사항은 최대한 제외시키려고 신경썼다. 그럼에도 혹시나 규정에 저촉되는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입대 1주 전 (4월 13일 무렵)

정신없이 놀았던 것 같다. 열심히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면서 밥과 술을 얻어먹었다. 혼자서 당일치기로 바다에 다녀오기도 했다. 기분이 정말 침울하고 암담하고 막막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의 어휘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 입대 전 날(4월 19일)

18일에 사람들과 술을 마신 뒤에 머리를 밀었다. 까끌까끌한 머리가 영 어색했다. 19일에는 하루종일 집에 처박혀있다가 저녁에 가족들과 같이 외식을 했다. 다들 위로의 한마디씩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기억이 잘 안난다... 그때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블로그에는 입대전 마지막 글도 올리고 사람들에게 마지막 연락을 돌리고 폰도 군정지를 시켜놨다. 훈련소에 가져갈 물건들도 다시 확인했다. 오히려 입대 전날엔 다 체념해서 그런지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이제와서 탓해봤자 내일 입대하는건 달라지지 않고 마음 편히 먹고 받아들이자 이런 마인드였던 것 같다. 새벽 1시쯤 잠에 들었다.

- 입대 당일(4월 20일)

아침 10시쯤 눈이 떠졌다. 뜨자마자 생각난건 '드디어 내 인생에서 올 것이 왔구나' 라는거다. 잠은 생각보다 설치지 않고 잘 자고 일어났다. 전날 마음을 편하게 먹었기 때문일지도.
논산 훈련소에 2시까지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11시쯤에 엄마아빠와 함께 집에서 나섰다. 어렸을 때부터 논산이라는 지명은 훈련소가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게 없는 생소한 곳이었다. 친가나 외가도 모두 경상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충청남도쪽 지역은 나와 교집합이 거의 없다. 때문에 창밖엔 대부분 낯선 풍경들과 지명들로 가득했다. 아마 앞으로도 볼 일은 없겠지...
대충 논산에 다다를 때쯤 되니깐 이제 슬슬 실감이 났다. 논산 시내로 들어서니 각종 군인 용품을 판다는 노점상들이 펼쳐져있고 도로의 이정표에는 육군훈련소라는 단어가 띄기 시작했다. 도로 위 다른 차량들을 쳐다보면서 저기에도 나와 같은 입대 예정자가 타고 있을까, 그 사람은 지금 무슨 심정일까 별게 다 궁금했다. 논산에 도착할 때쯤 시각이 대략 1시였으므로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처음에는 입맛이 없어서 안 먹겠다고 했는데 결국엔 끌려갔다. 식당엔 나와 같이 머리를 민 사람들이 테이블별로 한 명씩 앉아서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당시의 입맛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침울한 심리 상태와 맞물려서 밥알은 씹어도 돌덩어리를 씹는 것 같았으며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냥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입안에 집어넣는다는 기분이었다. 결국 밥도 반공기만 먹고나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을 먹고난 뒤 입영심사대로 이동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코로나 문제 때문에 입영 행사는 생략되고 군 장정들의 일행들도 훈련소 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눠야한다. 이제 이 문을 통과하면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나는 민간인이 아닌 군인의 신분으로 1년 6개월을 지내게될 여정의 첫 계단 앞에 섰다. 괜히 주위를 힐끔 살펴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헤어지는지도 관찰해본다.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포옹도 하고 이제 나는 문 안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오묘했다. 불과 1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인데 그 안에는 공기부터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이 군대라는 시스템에 맞춰서 재보정된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나 자신만큼은 잃어버리지 말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입영심사대에는 큰 운동장이 있어서 원래 코로나가 없었다면 그곳에서 같이 온 일행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영 행사를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행사 없이 입대할 사람들만 따로 모인다.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일종의 출석체크를 하고 본인의 연대, 중대, 소대를 배정받았다. 나에게는 1XX번 교번이 주어졌다. 앞으로 5주동안 나는 1XX번 훈련병 OOO 이라는 또다른 호칭을 얻은 것이다. 배정이 끝난 뒤에 이제 훈련소로 이동을 한다. 이동을 하는 동안 사회에 있는 육교를 지나게 되는데, 이 육교 위를 지나면서 앞으로 5주간은 사회와 작별을 하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최대한 눈에 많이 담아두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난다.

입영 당일 내가 두리번거렸던 그 육교..



입대 당시에는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 때이어서 그런지 방역에 매우 민감한 모습이었다. 최근에 해외에 갔다오거나 국내의 코로나 위험 지역에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고 걸러냈다. 사람사이의 간격도 최소 2미터씩 띄운 상태로 줄을 서거나 이동했다. 
훈련소에 도착해서는 생활관을 배정받고 세면용품과 생활복을 보급받았다. 생활관은 예상외로 2층침대가 쭉 깔려있었다. 나의 세금이 드디어 올바른 곳에 쓰였구나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있던 연대는 시설은 노후화된 대신에 침대는 다 새걸로 교체한 것이었더라)
그리고 저녁 식사를 했다. 훈련소에서 먹는 첫 끼니였다. 점심을 먹을 때보다 식욕이 훨씬 더 감퇴했다. 안 먹으면 혼날 것 같아서 의무감으로 밥을 욱여넣었다. 밥을 먹은 뒤엔 샤워를 했다. 60여명 정도의 인원이 단체 샤워장에서 샤워를 한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첫 날 샤워장 풍경은 문화 충격에 가까운 진풍경이었다. 그닥 대단한 복지나 시설따위는 기대도 안했다. 그냥 이게 군대려니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고나서 밤 10시에 취침에 들었다. 밤 10시에 자보는 건 몇 년만의 일이다. 수능 전날에도 이렇게 일찍 자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을 설칠 줄 알았는데, 왠 걸.. 눕자마자 잠든 것 같았다. 아마 첫 날이라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피로했던 것 같다.
나의 군생활 553일 중 1일이 지나간 날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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