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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51. 할아버지

4-so 2020. 6. 23. 01:17

일요일은 휴가 셋째 날이었다. 그 날에는 해야할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의 기력이 많이 쇠해지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날은 할아버지께 인사차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당초에는 군입대 전에 한 번 방문하려고 했었으나 당시의 코로나 문제로 인해서 결국엔 방문하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가게 되었다(코로나는 아직도 문제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지금껏 큰 지병을 갖고 계시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정신도 쇠퇴해지셨다. 무엇보다 이제 할아버지의 연세도 곧 90을 바라보고 계신다. 할아버지를 요양해주실 사람이 할머니나 며칠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분이 있기는 했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힘에 부치게 되자 1년 전쯤에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는 할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신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시면서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기시게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몇 분 뒤에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 코로나 문제로 인하여 외부인의 병원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밖에서 잠깐 인사드리는 시간밖에 없었다. 나와 부모님은 계속해서 할아버지께 말을 걸려고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눈이 반쯤 감기신 상태로 가만히 계실 뿐이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시는 건지 모르겠다. 말소리를 들으실 수 없는건지, 말소리가 청각기관에 전달은 됐으나 뇌까지 신호가 가지 않은 것인지, 신호는 갔지만 우리의 물음에 대한 적당한 대답을 생각해내실 수가 없으신건지, 아니면 그 대답을 다시 당신의 신체기관을 이용해 우리에게 전달할 방법을 잊으신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멀뚱히 허공을 응시하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한번 꼭 잡았다. 그곳에서는 손에 전해지는 어떠한 압력을 찾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는 성냥의 마지막 불꽃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렇게 짧은 병문안이 끝났다. 할아버지는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셨다. 같이 병문안을 가셨던 할머니께서는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시다가 결국엔 눈물을 훔치셨다.

 

어떠한 존재가 할아버지로부터 조금씩 생명력을 앗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는 사람의 신체 일부부터 시작해서 온 몸으로, 그리고 정신도 갉아먹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빼앗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다른 차원에서 그 힘에 미약한 저항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종착역을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제동을 걸 수 없는 고장난 수레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 라는 존재가 제동에 약간이나마 일조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빈다. 나에겐 아직 할아버지와 같이 찍을 '도장'이 준비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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