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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500. 페르소나

4-so 2024. 4. 2. 02:40

나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피하지는 않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을 더 중요시 여기는 편이다. 그에 반해 사회생활에서는 성격이 완전 딴판이다. 감정표현도 적극적으로 하고 사람들과 최대한 많이 얘기하면서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상반되는 두 성격이 한 사람 안에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내성적인 성격은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고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으로 감정을 삭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스스로의 내성적인 면이 너무 싫었고, 무엇보다 내성적인 성격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의 나와는 다른 자아를 연기해야 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자아상인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연기한다. 실제 성격으로는 할 수 없었던 행동이더라도 페르소나의 가면 안에서는 나는 어떤 성격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때로는 외향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되거나 혹은 조용하고 냉정한 사람도 되었다. 사회생활을 위한 가공된 성격을 정교하게 만들어내었고 주변 사람들도 이를 좋아해 주었다(사람들은 나의 진짜 성격인 줄 알겠지만).
 
무엇보다도 페르소나는 나와 사회생활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내가 하루동안에 쓸 수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혼자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현실을 도피하기에 바빴다. 페르소나는 깊은 암흑 속으로 빠져 들어만 가고 있던 나를 꺼내줌으로써 더이상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자신있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어디까지나 연기일 뿐이었고 나는 집에만 돌아오면 다시 동굴  속 깊이 숨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서 가짜 성격이 실제 성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외향인의 가면을 잠시 빌려 쓴 내성적인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내가 버리고 싶은 실제 성격과 내가 추구하는 가짜 성격 - 두 자아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둘 중 어떤 성격도 품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나'라는 사람은 아무런 특색도 없고 심지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둘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 걸까.

두 자아 모두 내 모습의 일부다. 과거에 얽매인 내성적인 성격의 '나'와, 내가 되고자하는 이상적인 환상 속 자아상인 '페르소나'도 모두 내 모습이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상처받기 쉬운 내성적인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갑옷으로 둘러싼 페르소나가 지키고 있는 형태이다.

두 자아는 상호보완적으로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면서 상대 자아가 돋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경계가 흐려지게 된다면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자아인 것처럼 동작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페르소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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