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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 3주 차 (5 4 ~ 5 10)

3주 차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된다훈련 첫 날(월요일)에는 화생방 훈련을 했다보통 화생방 훈련이라면 컨테이너 박스 같은 밀폐된 공간 안에서 최루탄(cs가스)을 피워놓고 방독면 착용 훈련을 하게 된다하지만 시기상 코로나 감염 우려로 인해서 가스는 터뜨리지 않고 방독면 착용 훈련만 하게 되었다여기까지만 해도 꿀인 줄 알았다내가 화생방을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었지만 예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그 고통스러움은 충분히 간접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생방을 생략한다는 것은 훈련소 기간동안에 큰 산을 넘은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방독면 착용 훈련을 해보니 이것조차도 쉽지 않았다방독면은 그냥 가방에서 꺼내서 착용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정해진 순서가 있다처음에 7초 안에 쪼그려 앉아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고 얼굴에 밀착시켜야 한다이게 쉽지가 않다소대장님이 좀 빡센 분이셔서 이걸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느라 진이 빠졌다게다가 그 날이 하필 날씨가 무덥고 햇빛도 쨍쨍해서 체감되는 힘듦은 훨씬 배가됐다지금까지도 첫 번째 훈련은 내 기억에서 가장 군대스러웠던 하루였다.

수요일에는 심폐소생술과 지혈법과 같은 구급법을 배웠다이 정도 훈련은 신체적으로 힘들지도 않고 무난했다목요일에는 수류탄 훈련을 했다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처음에는 연습용 수류탄으로 던지고 그 다음에 실제 수류탄으로 훈련을 하는데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훈련이 간소화되면서 연습용 수류탄으로만 던졌다수류탄 같은 건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이 던져봤는데실제로 수류탄을 훈련을 받아보니 그렇게 간단하게 던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수류탄에는 안전클립안전핀안전손잡이가 있어서 정확한 순서와 자세를 갖춰서 던져야한다현실과 게임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 법이다.

금요일에는 다음 주에 있을 사격 훈련을 위해 기본적인 총기 사격 자세를 배웠다사격 자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훈련을 하면서 군대에서 본격적으로 ‘구른다’ 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훈련하면서 하루 종일 엎드렸다가 일어섰다가 쪼그렸다가 반복이다몇 시간동안 수십번씩게다가 흙바닥에서 계속 훈련하기 때문에 훈련 마치고 옷을 갈아입을 때 보면 전투복은 누런색이 되어 있고 나도 모르는 사시에 팔꿈치나 무릎에 살갗이 까져있는 일도 다반사다그 당시에 ‘시키니깐 해야지라는 마인드로 훈련을 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소화했나 싶다사격 훈련 중에서 엎드려쏴 자세에서 총구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고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 후에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하는 훈련도 있었다(이 훈련도 매체에서 접한 적이 있었다). 처음 볼 때는 전혀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면 정말 어렵다일단 왼손은 총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계속 힘을 주고 있어야 하고방아쇠를 당길 때도 숨을 참은 상태에서 검지손가락을 서서히 힘을 주면서 당겨야 한다아무튼 온 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총을 쏘는 데만 정신을 집중해야만 겨우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야외에서 사격 훈련을 마치고 나면 실내에서 총기 분해 및 손질 방법을 배운다총기 손질은 사격을 한 뒤나 총이 더러워지면 그때그때 마다 꼭 청소를 해주어야 한다총기 손질을 제대로 안하면 총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한다그리고 총기 손질은 총 겉 부분만 아니라 안에 있는 부품 하나하나까지 닦아야하므로 총기 분해도 필수다. 총기 분해는 처음 배울 때는 생경하지만 그 뒤로도 몇 번 계속 하다보니깐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진다어렸을 때 레고를 조립했던 일이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는 것 같다총기를 분해해서 작은 부품으로 다 나누고 나면 천 재질의 손질포로 열심히 닦는다정말 미친 듯이계속해서열심히 닦아야 한다분대장이 총기 손질 다 했으면 갖고 와서 검사 맡으라고 하는데 절대 통과할 수 없는 검사라고 보면 된다내가 아무리 꼼꼼하고 열심히 닦더라도 어딘가 하나쯤은 더러운 부분이 있다분대장은 그걸 귀신같이 찾아낸다그냥 체념하고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계속 닦아야 한다.

주말에는 부식으로 컵라면이 나왔다내 기억상 신라면 블랙이었다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게 라면인데 군대에서는 내 맘대로 먹을 수 없다보니깐 라면조차도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 입대 4주 차 (5 11 ~ 5 17)

4주 차부터 사격 훈련이 시작된다사격 훈련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보니 간부들이나 분대장들도 매우 예민해진다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쉽게 얘기하면 사격 훈련을 하면서 가장 많이 혼나고 욕도 먹는다고 보면 된다

월요일에는 지난 금요일에 했던 것처럼 사격 기본 자세를 익히고 화요일부터 사격 훈련장으로 이동했다사격 훈련에는 영점 사격과 기록 사격이 있는데영점 사격은 약 20m 떨어진 지점에서 지름이 10cm정도 되는 원이 그려져 있는 과녁에 조준을 해서 맞추면 된다사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과녁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보인다어느 정도는 감으로 사격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사격 할 때는 지금까지 주구장창 연습해왔던 것처럼 숨을 참고 가늠쇠로 조준하면서 방아쇠를 서서히 당기면 된다이 사격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기계적으로 수행되어야만 사격장에서 떨지 않고 원래 본인의 실력대로 쏠 수 있다영점 사격은 총 9발을 3발씩 3차 시도에 걸쳐서 쏜다그래서 각 시도에서 쏜 3발이 좁은 구역 안에 몰려있어야만 사격 자세가 안정되었다고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 1,2 차 시도에서는 과녁 안에 총알을 집어넣지 못했다사격에서 조준을 하기 위해서는 가늠쇠를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봐야 한다(윙크를 해야한다). 그런데 나는 오른쪽 눈은 윙크할 수 있는데왼쪽 눈은 윙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 인생에서 사격을 하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양쪽 눈을 뜨고 조준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면 초점이 잘 안 맞춰져서 조준이 빗나갔다그래서 마지막 3차 시도에는 임시방편으로 왼쪽 눈을 마스크로 가리고 조준을 했더니 훨씬 안정적이었고과녁에 총알도 집어 넣을 수 있게 되었다어렸을 때 비비탄 총으로 쏴본 실력은 어디 안 간 모양이다다행이다.
목요일에는 기록 사격을 했다기록 사격은 영점 사격보다 훨씬 먼 거리인 100미터와 200미터, 250미터에 떨어져있는 과녁을 명중시켜야 한다시력이 어지간히 좋지 않으면 아예 과녁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소리다게다가 이번엔 한 발당 제한시간이 4초정도 밖에 안된다조준부터 격발까지 단 4초 만에 마쳐야 한다는 건데 정말 어렵다. 20발 중에서 12발을 맞춰야 통과인데 나는 9발을 맞췄다많이 아쉬움이 남았다한 번 더 쏴보고 싶었는데 훈련은 그대로 끝나버렸다사격은 그나마 훈련 중에서도 재밌다고 느낀 편이었다내 인생에서 앞으로 k2소총을 쏴볼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분명 한정된 기간과 횟수에 불과할 것이다그런 점을 감안해본다면 사격은 나름 인생에서 해볼 만한(사실 안하는게 가장 좋겠지만훈련이다.

 


- 입대 5주 차 (5 18 ~ 5 21)

드디어 대망의 훈련소 마지막 주차다마지막 주에는 훈련계의 최종보스라 불리우는 각개전투와 행군이 남아있다각개전투는 실제 전투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기동 방법등에 관한 훈련이고포복이나 약진철조망 통과 방법등을 배운다지난 주에 했었던 사격 훈련을 ‘구른다라고 표현했었는데각개전투에 비한다면 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각개전투는 구르고 또 구르고 계속 구른다훈련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구르는 게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훈련 초기에는 그래도 최대한 몸을 사려가면서 굴렀지만 이쯤되니 다 내려놓게 된다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몸을 내던질 수 있게 된다사회에서의 나는 이런 쪽의 몸을 굴리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몇 주간의 훈련소 생활이 나의 성향에 균열을 낸 것이다.

각개전투 훈련이 있었던 화요일이었다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비가 오면 방수가 전혀 안되는 판초우의를 입고 찝찝한 기분으로 훈련을 하러 간다훈련소에서 각개전투 훈련장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도보로 약 40분정도 걸어야 한다(왜 훈련장은 훈련소 바로 옆에 만들지 않는 걸까?). 걸어가는 동안 세차게 내리는 비바람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젖었다(신기하게 전투화는 방수가 잘 돼서 양말은 안 젖었다). 전투복은 물을 머금어서 평소보다 훨씬 더 무거워졌다훈련장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대부분 방전되었다그래도 훈련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가 멈추지 않으면 실내 훈련으로 대체된다고 하니 일말의 희망은 품고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그렇게 계속 걷다가 훈련장에 도착할 때 쯤 되니깐 빗줄기가 서서히 약해지더니 이윽고 훈련장에 도착하니 완전히 멈춰버린 것이다...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국방부와 하늘 사이의 모종의 유착관계라도 있는 것일까어떻게 해서든 군인들을 고생시키려는 의도가 아닐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좌절감은 뒤로하고 훈련은 계속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여기서 생긴 문제점 하나는방금 내린 비로 인해서 ‘흙바닥 ‘진흙바닥 ‘물웅덩이로 변했다는 사실이다그냥 단순히 흙바닥에서 구르는 거라면 이제 나도 거부감없이 해낼 수 있는데 물이 추가되면 얘기가 달라진다각개전투의 시작과 끝은 축축한 진흙바닥에 그냥 철푸덕 엎드리는 것이다진흙은 그냥 모래와는 다르게 옷에 묻어도 떨어지지가 않는다진흙이 마르면 전투복과 합체가 되면서 손으로 떼어서는 절대 안 떨어진다(나중에 훈련이 끝난 뒤 전투복을 다 세탁소로 보내서야 깨끗해졌다). 게다가 전투복 틈 사이로 진흙이 들어오면서 나중에 옷 갈아입을 때 보니 속옷 안까지 진흙이 침투해있었다이런 상태로 6시간동안 진흙밭에서 훈련을 받고 점심을 먹었다. 군필들이 말하기를, 군대에서 훈련 마치고나서 먹는 밥이 그렇게 꿀맛이라고 말하는데 근거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너무 힘들고 넋이 나가서 밥 먹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안 들었다. 애초에 군대에서 먹는 밥 중에 맛있는 밥이란 존재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밥을 먹고난 뒤에는 그 사이에 살짝 말랐던 전투복에 다시 진흙을 묻히러 갔다. 그 날 나의 전투복(방탄모와 전투화도 포함)에는 초록색 없이 모두 누런색으로 물들었다고 보면 된다.
목요일에는 대망의 마지막 훈련인 행군이다. 행군이란 20kg 군장을 매고 개인화기와 방독면까지 소지한 완전군장 상태로 약 20km거리를 걷는 훈련이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훈련 잘 받아온 사람들도 행군에서 많이 낙오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훈련은 참고 버티면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행군은 그 한계점이 상당이 높은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대비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중 하나로는 바로 전투화에 깔창을 두개 넣는 일이다. 전투화 바닥이 딱딱하다보니 오래 걷다보면 발이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군장까지 맨다면 더 쉽게 피로해질 것이기에 전투화를 개선하는 게 1순위였다. 확실히 깔창을 두개를 까니 발이 편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전투화 끈을 꽉 조여야 발과 신발이 합체된 것처럼 느껴져서 걸을 때 안정적이다. 끈을 헐렁하게 묶으면 발과 신발 사이에 유격이 생겨서 계속 흔들거리고 불편하다
군장을 행군 전날에 매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1차 고비로는 바닥에 있는 군장을 들어서 어깨에 매는 일이다. 20kg이다보니 군장을 들려고하면 내 몸 전체가 휘청거린게 된다. 몸의 반동을 이용해 들어올려서 신속하게 어깨에 쓱 매는 잡기술이 필요하다. 2차 고비는 군장을 매고 움직이는 일이다. 이 역시 군장의 무게로 인해 움직이면 그 방향으로 몸이 휘청이게 된다. 정신줄 놓고 걸으면 자칫해서 넘어질 수 있다는 소리다. 군장을 매고 있을 땐 다리에 힘을 놓아서는 안된다.
다음 날 행군은 아침 8시부터 시작되었다. 방탄모에 소총, 방독면 주머니, 가득 채운 수통까지 착용하니 어제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날은 기억상 날씨까지 무더웠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은 더 올라갈 것이기에 체력 안배를 잘 하는게 중요하다. 행군은 약 50분 걷고 10분 쉬는 사이클을 총 4~5번 반복하게 된다. 1차 사이클은 가볍게 훈련 연대 한바퀴를 돌았다. 3km거리를 30분동안 걷는다. 아직까지는 할 만 했다. 체력도 충분하고 발도 안 아프고 평지밖에 없어서 무난했다. 2차 사이클은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와야 했다 이번엔 약 4km거리 쯤 됐다. 여기서부터 슬슬 행군의 맛을 느꼈다. 체력이나 발은 괜찮다쳐도 길게 뻗은 오르막 길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군장매고 오르막을 오르는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헬스장에서 스쿼트 100개를 쉬지 않고 계속 하는 기분이다. 날씨도 슬슬 더워져서 땀은 비 오듯이 흐른다. 하지만 3차부터가 진짜 행군 시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엔 훈련소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아야한다. 거리상으로는 약 8km쯤 된다. 이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체력도 많이 소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몸이 1시간 전처럼 움직이지가 않는다. 앞 사람이 나아가고 뒷 사람이 따라오니 나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호흡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져서 자신만의 호흡리듬을 정하는게 낫다. 솔직히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심정이 1분에 한 번씩 떠올랐다(포기해도 수료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주변에선 낙오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 하나 빠진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거 없다, 남들처럼 포기하면 편할 거라는 마음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꾹 참고 걸어갔다. 일단 훈련소 마지막까지 왔는데 포기하기 싫었고, 어차피 인생에서 딱 한 번밖에 없을 경험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오기가 나를 계속 끌고 갔던 것 같다. 이 밖에도 별 생각을 다 했었다. 첫 휴가 나가면 어떤 음식을 가장 먼저 먹을지, 블로그에 지금 하고 있는 이 행군을 어떻게 묘사할지... 행군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머릿속을 아무 잡념으로라도 채우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걷는 자아와 생각하는 자아를 분리시키는 잡기술도 터득하게 되었다. 행군은 4시간동안 진행되어 정오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미 온 몸은 땀으로 다 젖어 있었고(태어나서 땀을 가장 많이 흘린 날이었을 것이다), 다리는 풀려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것으로 훈련은 모두 끝이 났다. 기분은 홀가분하고 전혀 아쉽지는 않았다. 훈련은 이걸로 충분하고, 더 이상의 훈련은 받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줄곧 이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와서 되돌아봤을 때, 행군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해낸 일은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어디 가서 자랑할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쪽팔리지는 않을 성취였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시련에 비한다면 행군은 친절한 편이다. 행군은 4시간동안 20km라는 총량이 정해져 는 시련이다. 나는 딱 그만큼만 고생하면 된다. 다른 시련들은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어서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 20. 09. 05 추가]

- 훈련 이후 (5 22 ~ 5 28)

훈련소에서 예정된 모든 훈련 일정은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기간동안에는 수료식과 전입을 준비하는 일이 남았다.

원래 (코로나 이전)수료식에서는 훈련병들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참석하여 훈련병들의 전투복에 이병 약장(계급장)을 붙여주는 의례가 있다. 쉽게 얘기하면 5주동안 고생 많이했고 앞으로 17개월만 더 고생하라는 행사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 문제로 인해 외부인들은 수료식에 참석하지 못함에 따라 우리들끼리만 소소하게 진행되었다. 나도 거사스럽게 많은 사람들 참석해서 수료식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전역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군생활 1/18 하는 것까지고 그렇게 야단떨 만한 일인가 싶다. 

수료식은 화요일이었고 전입은 목요일이었다. 그 사이의 기간에는 우리가 훈련소에 왔던 날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 청소와 정리정돈을 해야한다. 5주 동안 나와 함께 했던 k2소총과도 작별해야 한다(하나도 아쉽지는 않다). 총기번호를 외우지 못하면 엄청 혼났기 때문에 평생 기억할 줄 알았는데 4개월이 지난 지금, 새햐얗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지금쯤 또다른 훈련병이 그 총을 쓰고 있겠지.

수료 이후는 정리정돈과 함께 전입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투복에 부착할 이름표와, 이병 약장, 군번줄도 보급받았다. 이제 내가 군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 없이 보증하는 증표들이다. 이거 몇개 받을려고 5주동안 이렇게 고생했나 싶다. 전입을 준비하면서 의류대(큰 가방)에 짐을 챙겨가야 한다. 챙겨야 할 짐들이 꽤 많다. 우선 전투복 상하의 4세트, 하복, 춘추복, 동복 상하의 2세트, 전투화, 운동화, 수건 및 속옷 여러 세트 등 다 집어넣으면 부피가 상당해진다. 원래는 수료식 때 가족들이 오시면 짐을 조금 나눠가질 수 있는데, 이번에는 꼼짝없이 내가 다 가져가야 한다. 이 짐들을 의류대에 다 쑤셔 넣으면 무게가 장난 아니다. 행군 시즌 2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기억상으로는 행군때 맸던 군장의 무게보다도 의류대가 더 무거웠다. 이것 때문에 훈련 때 행군으로 연습시켰나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 의류대를 매고 훈련소 옆에 있는 기차역까지 걸어가야 한다. 거리로 따지면 약 3km쯤 됐을 것 같다. 훈련소에서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제대로 고생시켰다. 의류대를 매고 떠나기 전에, 생활관에서는 5주동안 나와 같이 생활했던 동기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내가 이 친구들을 다시 볼 일이 있을까? 5주동안 다들 친해졌고 재미있게 지내기는 했지만, 휘발성이 강한 인간관계라서 조금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나중에 때가 되면 그 때 생각해보기로 해야겠다. (그래도 4달이 지난 지금까지 단톡방이 만들어져서 간간히 대화는 하고 있다.)

기차에 탑승하고 얼마 뒤 기차가 출발했다. 기차에는 한 칸에 무려 200명이 넘게 탑승한다. 양쪽에 2명씩 꽉 채웠을 뿐 아니라, 복도에도 사람이 가득 찼다. 군인이었기에 참을 수 밖에 없는거지, 다른 곳이었다면 난리가 났을 법한 광경이었다. 기차는 당장이라도 분해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요란한 진동을 울리면서 달려갔다. 내 생각에 노화로 인해 퇴역한 무궁화열차를 군인 수송 열차로 재활용하는 것 같았다. 기차는 논산에서 서울까지 약 4시간을 넘게 달려갔다. 생각해보니 ktx가 아닌 기차를 타는 일은 엄청 오랜만이었다. 창가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들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역시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 느낀 점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느리게 흘렀던 5주였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군대같은 인생에서 피하고 싶은 일들을 앞두고 있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을 자주 인용하면서 위로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맞다. 언젠간 지나가는 일이다.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훈련소 생활도 벌써 4달이나 지난 일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기준으로 13개월 남은 군생활도 나중에 돌아보면 '지나가버린' 일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그런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땐 그랬었지' , '그런 고생도 했었지' 정도로 기억 어딘가에 방치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가볍다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주간의 훈련소 생활은 짧았지만 분명 내 인생에서 묵직한 족적을 남기고 간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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