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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29. Don't Cry

4-so 2020. 2. 16. 03:18

어제 TV를 보면서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딱 한 채널에 멈춰섰다. 그 채널에서는 귀에 익은 노래의 전주가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무대 위의 실루엣이 드러났을 때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건반을 치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가수 더 크로스의 'Don't Cry' 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더 크로스의 보컬리스트는 몇 년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서 몸의 대부분이 마비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무대 위의 문이 열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분명히 그 사람이었다. 내 기억상에서 사고를 당하기 전의 방송에서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했던 영상의 주인공, 그 사람이 확실했다.

 


내 또래 남자들에게 Don't cry는 결코 평범한 노래는 아니다. 노래방에서 고음을 한번 질러보고 싶을 때 경건한 마음으로 선곡하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몸의 모든 신경과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여 불러도 될까 말까하는, 그런 신성한 곡이었다. 마치 여자들에겐 '소찬휘-Tears'가 있다면 그에 대적할 수 있는 남자들의 최후의 보루같은 노래랄까, 아무튼 그런 곡이다. 나는 차마 부를 수 없었지만 유튜브에 남아있는 그 분의 예전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나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나 희열을 느끼고는 했으니 말이다. 
나의 워너비 노래의 원곡 가수분이 휠체어에 앉아서 예전만큼의 고음과 성량은 아닐지라도, 나의 과거의 잔상을 재현해주셨다. 내 생각엔 이미 이 노래는 '고음을 소화해야만 하는 노래'의 범주를 벗어났다. 노래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어떤 고음이나 음표나 기교는 단지 허울뿐인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분은 그러한 형식적인 잣대를 들이밀어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더 크로스의 보컬이신 김혁건씨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나는 이 노래를 평생 10여년전의 무대의 촬영본으로밖에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2020년이 된 지금에도 볼 수 있게 해주셔서...사고 이후의 신체적 장애와 심리적 좌절감이 덮쳤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무대위에서 다시 노래를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래의 제목처럼 울지 마시고, 좌절을 이겨내셔서 좋은 노래를 들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꼭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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