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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65.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4-so 2020. 11. 21. 23:44

 지난 11일 금요일 아침, 부대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소대장님께서는 곧바로 나갈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부모님의 연락을 받았지만, 막상 실제로 닥쳐오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복귀하고나서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장례식장 앞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수많은 화환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걸려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사진 앞에서 절을 두 번 올렸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아직 죽음이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당장 와닿게 설명을 해보자면 고인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영영 볼 수 없게되는 일이다. 근데 그 이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의미가 아직 나에게는 가벼운 기척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가 싶다.
할아버지는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에도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시고, 몇 개월 전부터 생명의 징후가 차츰 흐릿해져왔기에 갑작스런 죽음도 아니었다. 아버지나 다른 친척분들도 말씀하시길, 충분히 '예정된' 죽음이었고 호상이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어떤 방식으로 인지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장례는 3일장으로 치뤄졌다. 첫째 날에는 을 하는 절차가 있다. 염은 고인의 신체를 삼베와 같은 옷으로 감싸주는 일을 얘기한다. 이때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꼭 감고 계셨다. 언뜻보면 주무시고 계신 것과 크게 분간이 가질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생명체로서 지녀야 할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수십년의 세월 동안 그것을 간직해오시다가 최근에서야 그 무언가를 상실하시게 된 것이다. 염 과정 동안 할머니를 포함한 집안의 몇몇 어른들은 눈물을 훔치셨고, 나도 코 끝이 찡해졌다. 고인의 몸을 옷으로 둘러싸는 과정은 기술자분들에 의해 능숙하게 진행되었다. 그 손놀림에는 어떠한 감정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사람들도 이런 작업은 지금껏 수백 번도 넘게 해왔을테고 오늘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할테니 말이다. 기술자와 가족들 사이에는 역설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튿날에는 본격적으로 조문객이 많이 다녀가셨다. 조문객이 오실 때마다 나와 상주이신 아버지의 형제들은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조문객들은 각자마다 할아버지와 연결된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인연의 끈에는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장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이 죽음으로써 더 이상 끈을 잡아당길 수 없게 되면 그 인연의 끈은 축 늘어지고 말 것이다. 조문객들은 모두 늘어져있는 그 끈을 마지막으로 거두기 위해서 이곳까지 오신 것이다.

마지막 3일째 되는 날에 발인이 있었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서 걸어갔고 뒤에서는 상주가 관을 들고 따라왔다. 나는 사진을 들고서 고인의 생가와 마을 한 바퀴를 쭉 돌았다. 마을 주민들과 할아버지의 형제분들은 영정사진을 만지시면서 흐느껴 우셨다. 할머니는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시다가 곧 따라가신다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할아버지는 집 바로 뒤 편에 있는 선산에 묻히셨다. 흙으로 핣아버지의 모습이 모두 감춰질 때까지 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어떤 기억을 갖고 있었을까. 예전부터(그리고 현재까지도) 우리 집안은 70~80년대 전통적인 농촌 마을에 있는 집안이고, 그 당시의 풍습이 꽤나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명절만 되면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서 사촌들을 만나고, 추석과 설 당일날 되면 차례상 앞에서 절을 했다. 당연히 그 때도 할아버지도 함께 계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때도 멀쩡한 정신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나를 제대로 알아보셨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사촌으로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 치매의 초기 증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나와 할아버지는 대화를 5마디 이상 주고받기가 어려웠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그 이상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할아버지와 어떠한 종류의 굵직한 추억이라고 부를 말한게 거의 없다.

내가 할아버지의 옆으로 다가가면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셨다. 지금 떠올려봐도 선명하게 주름이 깊게 패이고 까끌까끌한 손이셨다. 그리고 그 흐릿하신 정신으로 내게 덕담을 건내셨다. 덕담의 내용은 세상의 그 어떤 할아버지에게도 들을만한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건강 잘 챙기고...'이런 내용이었다. 그 당시는 철도 없었거니와 그런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그런 덕담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할아버지가 내게 건내는 덕담을 점점 짧아지시고, 어느 순간엔 아무 말도 하시지 못하게 되었고, 이젠 집이 아닌 병원으로 거처를 옮기시게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의 덕담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내 손을 잡으면서 덕담을 건내실 때가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나의 손을 잡을 때의 그 악력과 손의 촉감, 그리고 할아버지의 음성은 내 인생에서 그 어떤 기억의 풍화작용이 일어나더라도 깎여나갈 수 없는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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