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머리를 기꺼이 비싼 돈 주고 자르는 이유

1. 비싼 미용실은 '대체로' 좋은 디자이너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국의 헤어 디자이너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 수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한 명씩 머리를 잘라봐서 누가 나한테 가장 잘 맞는지 확인해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머리를 매일매일 자르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한정된' 디자이너 표본공간에서 누가 그나마 자신과 잘 맞는지를 시험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일은 훌륭한 표본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디자이너들이 많이 모여있는 집단을 확보할 수 있을까? 정답은 예상되다시피, 비싼 미용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비싼 미용실이 훌륭한 집단을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디자이너'가 '비싸지 않은 미용실'에 있을 확률이 0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대체로'라는 부사어를 붙인 것이다. 다만 내 주장의 핵심은 비싼 미용실은 전국 어딘가에 숨어있을 그런 디자이너를 모아놨을 가능성이 크므로, 본인이 직접 찾아야하는 탐색 비용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2. 머리의 완성도는 어차피 당사자 스스로의 만족도에 달려있다.

이 주장은 여러 반론이 있을 것 같은데 나의 주관적인 견해라는 것을 먼저 밝히겠다.

미용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보통

• ① 인건비가 비싼 인력을 많이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 ② 지대(땅값)가 비싼 상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 ③ 인적 자원 이외의 부분들(미용실 인테리어나 서비스)에 투자된 비용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요약된다. ①번 이유는 바로 위에서 다뤘었고, 이번에 주목할 것은 ②,③번 이유이다.

이런 실험이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가상의 실험을 하나 설계한다고 하자. 두 집단이 있는데 한 집단은 평범하거나 혹은 낡은 시설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다른 한 집단은 굉장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다. 이때 실제로 머리를 자른 뒤의 결과물은 동일하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두 집단의 사람에게 각각 머리를 자른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 설문을 실시한다. 나는 이 실험에서 후자(고급스러운 미용실에서 자른)집단의 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 그러냐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에 따르면, 머리를 자른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실제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당사자가 머리를 자르는 주위의 환경과 투자한 cost등을 따진 뒤 이것들을 머릿 속에서 결산하여 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난다. 앞에서 설명한  ②,③번 이유가 바로 이러한 배경적 효과를 제고시키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좋은 곳에서 잘랐으니, 결과물도 당연히 좋을 거야'라는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 

3. 완벽한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머리를 자른 뒤에 들었던 생각들을 떠올려보면, '돈 아까운데 싼 곳에서 자를 걸'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결과물이 불만족스러울 때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자를 걸'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많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기름값이 1원이라도 저렴한 주유소를 찾는 문제와는 다르다. 즉 어딜가나 비슷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수록 더 높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 상품이다. 그래서 비싼 곳에서 자를수록 '돈 더 내더라도 비싼 곳에서 자를 걸' 이라는 후회를 방지할 수 있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최상의 선택지를 골랐다면, 나는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어리석음이 아닌 외부로 돌릴 수 있는 자기 합리화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면 마음이 한결 더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