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기

407. 민트라떼

4-so 2022. 8. 28. 02:54

민트라떼

 

민트초코는 부먹/찍먹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불호 난제 중 하나이다. 나의 경우, 민트초코는 먹을 수는 있지만 굳이 내 돈 주고 사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 중립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초코덕후인 나로서 초코만 하나만 먹어도 부족할 정도인데 거기에 민트맛이 끼어듬으로써 초코맛이 희석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민트와 초코는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민트는 박하사탕처럼 고깃집의 계산대 위에 놓여있는 사탕 안에 함유됨으로써 본인의 본분을 충분히 다 수행했다고 박수받아 마땅한 식자재이다. 하지만 선을 넘어서 맛의 결이 다른(쓴맛과 단맛) 식자재에 들러붙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때문에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민트초코를 결코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점심을 먹고 나서 회사 앞에 있는 민트 전문 음료점에서 민트라떼를 하나 먹었다.민트라떼는 이름 그대로 우유에다가 달달한 민트시럽을 첨가한 음료이다.  민트초코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썩 좋아하지 않기에 그 대신 라떼를 택한 것이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보는 민트였지만 그날따라 왠지 도전해보고 싶은 의욕이 샘솟았다. 때로는 내가 오랫동안 굳게 믿고 있던 진실도 주기적으로 검증을 받으면서 계속 지켜나갈만한 가치가 있는 진실일지, 아니면 나의 생각을 뒤집어야 할 지 판단할만한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민트라떼는 생각외로 괜찮았다. 민트맛이 너무 진하다고 생각될 즈음에 우유가 적당히 치고들어오면서 부드러운 맛으로 중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우유가 어느 음식에든 들어가면 원재료의 맛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는데, 민트에서도 역시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단지 우유의 맛만을 배제하고서라도, 민트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너무 달달한 감도 있긴 했지만 특유의 향이 입 안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나는 그동안 왜 민트를 싫어했던걸까. 아마 나는 민트 자체를 싫어했다기보다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초코 옆에 붙어있는 바람에 초코를 방해하는 민트의 존재 자체를 싫어했던 것 같다. 민트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아이였다. 그리고 민트는 자신의 영역을 넓힐만한 훌륭한 파트너를 찾던 도중 초코를 만난 것이다. 이 둘은 어쩌 어쩌다가 같이 콜라보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온 음식이 바로 민트초코였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초코는 이미 수많은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많은 초코 지지자들은 초코맛에 편승하려는 민트의 행태를 보고 가만히 두고볼 수 없었고, 그 결과 '민트초코 보이콧'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운동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해 하다가 저 민트라떼를 먹음으로써 정답을 찾아내었다. 초코는 초코만의 고유 영역이 있고, 민트도 민트의 영역이 있다. 나는 이 둘의 교집합 안에서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민트의 영역도 좋아하고, 초코의 영역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각자의 영역에서의 업적을 존중하기만 하면 된다. 세상의 모든 조화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흰색도 좋아하고 검정색도 좋아하지만 회색은 별로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흰색과 검정색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품고 있는 불호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불필요한 불호는 경계해야 한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9. 카페인 적응  (0) 2022.09.13
408. 전역 1년 후  (0) 2022.09.06
406. 세 가지 부류  (0) 2022.08.22
405. 피곤한데 힐링  (0) 2022.08.13
404. 선택적 외향형  (0) 2022.08.06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