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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469. 욕망의 대체품

4-so 2023. 8. 23. 03:42

군 복무 시절에 PX에서 많이 사먹은 냉동식품 중에서 '황금밥알'이라는 제품이 있었다.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단순한 계란 볶음밥으로 나온 제품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금방 매진되곤 했다.

최근에 마트에서 냉동식품을 구경하다가 이 황금밥알이 눈에 띄어서 옛날 생각도 나는 김에 한번 사가지고 와서 먹어보았다. 솔직히 맛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다고 할 순 있지만,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군대에서 먹던 느낌과는 2% 부족했다. 나는 그 2%의 정체를 '욕망의 대체성' 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군대서는 외부 음식의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보니, 선택의 자유도 없이 무조건 매번 먹던 음식만 먹어야 한다. 그러다가 음식이 정말 질리는 날이면 PX에 가서 냉동식품 이것저것을 사먹곤 했다. 생각보다 별의별 음식이 냉동으로 다 나온다. 치킨, 볶음밥, 만두는 물론이고 파스타, 피자, 볶음짬뽕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냉동식품이 출시될 수 있는 배경을 파고들어보자면, 군인은 욕망이 억눌린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욕망'이란 사회에서 먹고싶은 음식들이 해당될 것이다. 이 억눌린 욕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대용품이 바로 PX의 냉동상품이다. 

당연히 치킨이든 볶음밥이든, 사회에서 파는 음식이 냉동식품보다 더 맛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은 사먹을 수 없는 신분이다. 따라서 군인은 현재 상황에 의해 좌절된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냉동식품에다가 강력한 조미료인 '욕망의 대체성'을 넣게 된다. 지금 먹는 황금밥알이 군 시절에 먹었던 것보다 별로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욕망의 대체성'이라는 조미료를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PX 냉동식품의 정체는 바로 '욕망의 대체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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