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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정치에는 문외한이라서 이 분야에 관해서는 블로그에 잘 언급하지는 않는다만, 지금 작성할 글만큼은 이례적으로 정치를 건드리는 글이 될 것 같다.

 

얼마 전에 한 여성 의원이, 그리고 어제는 제 1야당 대표가 삭발식을 감행했다.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의 적격성에 대한 항의가 그 명분이었다. 나 역시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의혹들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그에 따른 처분이나 의혹들을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장관직 임명을 강행하였고 결국 야당의 불만이 폭발하여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

 

삭발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도 어렸을 때부터 TV나 신문속에서 삭발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주로 이번 사건과 같은 정치인들이나, 회사의 노조원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때부터 어린 나는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는 몰라도, 항의하고 싶으면 머리를 밀면 되는구나.' 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항의에 대한 수단으로서 '삭발'을 하는 것일까? 삭발은 꽤나 매력적인 항의 수단인 것 같다. 일단 사건을 밖에서 바라보는 대중들에게 시각적으로 큰 이목을 끌 수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느 사람을 만나던 삭발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들을 불러다놓고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퍼포먼스도 선보일 수 있다. 이도 방금과 비슷한 맥락으로 흔치 않은 광경이므로 큰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머리카락은 밀어도 다시 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교적 큰 부담없이 머리를 밀 수 있다. 

 

예전만 하더라도 나는 삭발을 부정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공론화시킬 수도 있고, 저항에 대한 메시지도 표출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번에 삭발한 당사자는 모두 정치적으로 충분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사태에 대한 문제 의식 역시 사회에 충분히 퍼져있는 상태였다. 이 사람들이 보여준 삭발은 딱 '퍼포먼스'에만 불과하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안 사준다고 떼쓰는 격이다. 그 분들 입장에서는 퍼포먼스로 인한 지지층 결집이나 대중들의 관심 집중과 같은 손익계산은 나보다도 더 치밀하게 머리를 굴렸겠으나, 대중들은 과연 저항에 대한 표현으로서 삭발식을 거행한 야당 의원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그 분들의 직업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소명 의식은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충동적인 행동이 아닌 적법한 절차와 토의를 거쳐 해결하는게 아닌가. 나름 제 1야당 대표로서, 이번 사태를 일회성 퍼포먼스에만 치중되지 않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해결하려는 편이 더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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