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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당연함과 당연치 않음

4-so 2020. 12. 23. 16:02

소설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저

 

이 소설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시대에는 아이를 낳을 때 더 이상 모체수정을 할 필요 없이, 모든 아이는 시험관수정을 통해서 태어나게 된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파,베타,감마,엡실론 등 사람의 계급과 신체적 외형, 앞으로 하게 될 일이 모두 정해진 채로 태어나고, 정신적인 사고 역시 태어나거나 어렸을 때부터 주입되어 자라난다. 또한 슬프거나 화나는 감정이 생기면 지금의 마약 역할을 하는 소마를 섭취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고 행복함만 느끼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당연시 여겨지는 일들이 그 시대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고, 지금으로서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당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어머니라는 용어가, 시험관 수정으로만 태어나는 그 시대에는 상스러운 욕설로서 통용된다는 게 하나의 예이다. 이처럼 소설은 끊임없이 현재의 윤리관으로 비추었을 때 당연함과 당연치 않음이 역전된 미래 세태의 모습을 하나씩 서술해나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과연 성욕, 식욕, 물질욕이 모두 깨끗이 해결되고,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소마하나 섭취해서 신기루 같은 행복을 느끼게 되는 일상들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분명 현재의 우리들은 위에서 언급한 세속적인 욕구들과 행복을 찾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살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하루 아침에 모두 말끔히 해결된다면 앞으로 모든 일들이 순탄하기만 할까?

소설에서는 사고를 통제받기 때문에 이런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야만인으로 묘사되는 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존은 소설의 중반 무렵부터 문명인과 대립되는 존재인 야만인으로서 묘사된다. 왜냐하면 그는 문명인과 달리 모체 수정으로 태어났고, 어머니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무 여자와 성교하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존은 원래 야만인들만 모여 사는 구역에서만 살았으나, 문명인이 발견된 후 문명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존은 온갖 (야만인 기준으로서)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행해지는 걸 목격하고는 문명인들에게 강한 반발심을 품게 된다. 그래서 존은 온실 속에 사는 문명인들에게 연설을 늘어놓지만, 문명인들은 오히려 존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되고 존은 고립된 지역으로 추방된다. 그 이후 존은 문명인들에게 관광상품 취급을 받으며 조롱받으며 살게 된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시종 본인이 야만인에 해당하는 으로 대입됨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옳고 그들이 그른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나를 제외한 절대 다수는 그른 것이 옳은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된 시점에서는 정녕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그 경계선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이고, 애초에 경계선이 존재했는지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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