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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422. 첫 예비군

4-so 2022. 11. 8. 01:49

작년 9월에 전역한 이후로 다시 군복을 입었다. 오늘은 첫 예비군 가는 날이다. 원래 예비군 1~4년차는 동원훈련이라고 해서 3박 4일동안 훈련을 받아야하는데, 나는 현재 대학교 재학중이기 때문에 학생예비군을 받을 수 있다. 학생예비군은 하루 8시간만에 모든 훈련을 마칠 수 있기 때문에 꿀같은 제도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나는 내년에 학교를 졸업할 예정이기에 이 꿀제도를 단 한 번밖에 못 누린다는 점이다.

 

예비군 훈련장은 평택에 있다. 학교가 수원이라서 아마 그곳에 배정된 모양인데 내 집에서는 너무 멀었다. 아침 9시까지 반드시 훈련장에 입소해야 하고, 학교에 집합하는 시간이 아침 7시 반이다(학교에서 훈련장까지 버스편을 제공해준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 최소 6시에는 나와야 한다는 뜻인데, 나는 도무지 아침 6시에 일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차를 타고 훈련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전날에 카카오 네비로 집에서 훈련장까지 찍어보니 예상 소요시간이 대략 1시간 20분정도 나왔다. 그러면 여유롭게 7시 20분쯤 집에서 나와서 출발하면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렇지만 세상에 모든 일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첫 번째 문제는  네비가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안내해주었기 때문에 무조건 직진이 아니라 경로 중간중간에 좌회전, 우회전이 마구 섞여있었다. 게다가 가는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로 운전해야했고, 결국에 길은 중간에 한번 잘못들어서 10분정도 날렸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출근시간이어서 그런지 가는 길이 매우 막혔다는 점이다. 분명 집에서 나설 때만 하더라도 예상 도착시간이 8시 40분이었는데, 점점 갈수록 8시 50분, 9시, 9시 10분으로 늘어났다. 정말 멘탈이 바스락 부서지는 것 같았다. 9시가 넘으면 칼같이 입소를 막는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에 점점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그러면서 카카오 네비는 왜 출근시간의 교통정체까지는 반영하지 않는지에 대한 원망도 쌓였다. 아무튼 고생끝에 거의 2시간이 걸려서 약 9시 10분에 훈련장 주차장에는 도착했다. 될지 안될지는 몰라도 일단 한번 비벼봐야 한다는 심정으로 갔다.  그런데 다행히... 자비로운 간부님께서 입소를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자 내 뒤에서 문이 닫혔다. 아마 내가 오늘 훈련생중에서 마지막 도착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 그 간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오는 길에는 정신이 없어서 의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나는 1년 2개월만에 다시 군복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훈련소에는 나와같이 군복을 입은 사람이 족히 100명은 넘게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있자니 예전의 군생활 하던 시절이 떠오르는 건 당연할 일이다. 오늘의 나는 8시간짜리 임시 군인이지만 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법이다. 군인들이 군생활 할때는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막상 전역하고 나면 '그때가 그리운 순간' 이 가끔 한번씩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비군은 이러한 그리운 순간을 간접적으로나마 제공해주는 최적의 제도가 아닐까? 물론 나는 군 시절이 한번도 그리운 적이 없었기에 예비군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정말 암울했다.

 

훈련을 크게 4가지가 있는데 쉽게 요약해서 육군훈련소 2주차 ~ 5주차 과정을 단 8시간만에 복습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갔던 훈련장은 '과학화 훈련장'이라서 그런지 시설도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고 나름 첨단 과학기술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팀을 나눠서 하는 모의 전투 훈련에서는 레이저가 발사되는 총과, 이를 피격으로 인식하는 장구류를 입고서 실시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솔직히 좀 재밌었다. 생전 처음해보는 훈련이라 재밌고 다음부터는 재미 없을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현역으로 군대 나온 남자'라면 한번쯤은 해보고싶은 전쟁영화속의 주인공 모습을 본인이 직접 재연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그때가 그리운 순간'이 절실한 전역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실탄사격을 한다. 나는 당연히 현역때 사용했던 K2소총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난생 처음 접하는 M16으로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5발밖에 안 쏜다. 한 20발을 쏠 줄 알았는데...조금 아쉬웠다. 

그렇게 나머지 훈련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영상 조금 보다가 훈련좀 하고 대기하고, 이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 군 생활때 느꼈었던 그 시간의 흐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헌혈이나 온라인으로 조기 이수를 하고 온 사람은 몇시간 조기퇴소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라서 후회했다. 다음 예비군에는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난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학생 예비군이다. 다음 예비군부터는 적용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예비군은 너무 귀찮다. 과거의 관성으로 인해 현재까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형식적인 잔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군생활 하면서 똑같이 느꼈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이러한 형식적인 잔재로만 이루어진 부분이 너무 많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그리고 현재의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하자면 반드시 예비 병력들이 전장에 투입될 만한 준비가 갖춰줘있기는 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오늘 받은 이 훈련이 진정으로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 시간을 짧더라도 대비는 확실히 할 만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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