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300. 나에 대해서

4-so 2021. 3. 6. 16:59

블로그를 개설한 지는 3년이 지났다. 일기로 쓴 글은 300개, 다른 비공개 글들까지 합치면 400개가 넘는 글을 발행했다. 이번에 쓸 글은 내가 썼던 글 중에서 가장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글이다. 내가 지금껏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머나먼 여정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에게는 벽이 있다. 그 벽은 성벽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예전에 ‘울타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글은 사실 나에 대해서 쓴 자전적인 글이다. 그 글에서 울타리로 묘사된 것이 지금 내가 말하려는 벽과 동일하다. 나는 이 벽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무렵(약 1년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벽이 있어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벽의 바깥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 벽은 내게 보호막이었던 동시에 감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어쩌면 지금에 걸쳐서) 큰 불평 불만 없이 그 벽 안에서 살아왔다. 그 곳은 감옥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동안은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커감에 따라 그 벽 안의 공간이 좁아져 갔다. 사회는 내게 그 벽 안에서 나오리라고 요구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곳은 내가 오랜 시간 동안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던 안식처였다. 공간이 좁아지더라도 나 자신을 욱여넣으면서까지 나는 그곳에 안주하려고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벽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이런 심리 체계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어린시절부터 많이 싸웠다. 나 때문에 싸울 때도 있었고, 나와 무관한 일로도 싸웠다. 주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은 자주 싸웠고 나는 집에서 그 싸움 현장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 때 나의 심정은 너무 괴로웠다. 나는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스스로의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벽을 쌓게 되었다. 누구도 나를 상처줄 수 없게, 어떤 공격도 막을 수 있도록 벽은 견고하고 높게 세웠다. 다행히도 이 벽이 무너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 벽이 지금까지 허물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왔다. 

하지만 나는 벽을 너무 높게 쌓은 나머지, 자신마저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평생 이 안에 머무를 것인지, 벽을 허물고 나갈지 말이다. 벽 안에서 안주하는 일이 나에게는 훨씬 더 간단한 일이다. 굳이 모험을 걸 필요도 없다. 다만, '나'라는 인간은.이 자리에서 그대로 정체되고 만다. 나는 자신이 굳어버린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서야 벽의 바깥으로 나가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바로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현재의 나의 위치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이 선행되고 나서야 이후의 계획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해보이는 과정처럼 보일지라도, 20년 넘도록 나를 따라다녔던 그림자를 들춰내어서 떼어내는 과정이기에 익숙함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 이젠 더이상 그림자 뒤에 숨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썼던 300여개의 글들이 첫 번째 과정의 일환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정은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에 관한 것이다. 그림자를 떼어 냈다면 이제는 새로운 '나'를 빚어내야 한다. 다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벽을 허물어가며 새로운 '나'와 조우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