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전역
내가 이 글을 쓰게 될 날이 올줄은 몰랐다.
이제는 군인 신분에서 벗어났으니 속 시원하게 군대에서 느낀 점 몇 가지에 대해 풀어보고자 한다.
1. 시간은 어찌되었건 흐른다.
정말 잔인한 말이다. 이 얘기를 나의 입대 날인 2020년 4월 20일로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해준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 말은 이미 입대 전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나름의 위로 멘트였다. 시간은 흐른다고... 지난 18개월의 시간 동안에는 믿지 못했지만 지금이 되어서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결국 흐른다.
2.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군대에 가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솔직히 말하면 나쁜 쪽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나름 인생의 처세술들을 군대에서 배울 수 있다. 내가 습득한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기'이다.
3. 나에겐 끔찍함이 누군가에겐 사명감이다.
314. 군 생활에서 남는 것
위 글에서 작성했듯이, '군대'라는 내가 끔찍하게 여기는 곳을 자신의 숙명, 사명감으로 복무하는 분들이 계신다. 군대에서 이런 훌륭하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4. 악폐습을 거스르는 힘
내가 복무했던 부대, 특히 그 중에서도 내 생활관은 군대의 악폐습(혹은 부조리)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 생각해보았다. 물론 각 생활관별로 대대로 이어져오는 분위기자체도 좋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생각했을 때 결정적인 이유는 모두가 품고있는 공통된 원칙 하나가 있었다.
우리가 겪은 부조리를 후임들에게 물려주지 말자.
대개 조직생활에서 악폐습은 대물림 되기 쉽다. 특히 그 조직이 군대라면 더더욱 더. 하지만 나는 더이상 군대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행태들이 자인되고 있는 걸 좌시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군대를 두고 x같은 곳이라고 칭했으면, 최소한 나는 내 후임들에게는 x같은 곳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부조리를 당했다고 해서 똑같이 물려주면, 나는 군대 부조리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당했다면, 그리고 그게 x같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게 우리가 군대에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수이자 반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