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314. 군 생활에서 남는 것

4-so 2021. 4. 24. 10:00

작년 이맘때쯤, 나는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 신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소대장님은 실로 대단한 분이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정말로 ‘참 군인 그 자체’인 분이셨다. 목소리며 제식이며 옷차림이며 그 소대장님을 이루는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군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그 분이 우리의 훈련 교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소대는 훈련을 할 때마다 다른 소대들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 당시에는 왜 하필 이렇게 빡센 교관을 만나서 고생을 해도 남들보다 더 심한 고생을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훈련 일정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훈련병들은 소대장님과 필수적으로 개인 면담을 받아야 했고 나도 소대장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소대장님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냐고 내게 물어봤다. 사실 면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소대장님이 물어보시자 불현듯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물어본 질문은 ‘군인이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였다. 이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직업 중 하나가 바로 군인인데, 소대장님은 내가 이해 못 할 직업의 본분을 너무나도 충실하고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대장님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자신의 아버지도 군인이었기 때문에 본인도 따라서 군인이 되었다고 하셨다. 중간에 잠시 군인을 그만두시고 다른 일을 하려고도 했지만, 얼마 전에 다시 군인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군인이란 직업이 자신에게는 버릴 수 없는 숙명같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을 들은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 5달 더 있을 군생활을 모두 통틀어서라도 아마 가장 큰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직업이라 여길지라도, 누군가에겐 그 직업이 자부심이고 사명감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문화충격이었다. 그날의 그 말씀은 1년 동안 이어진 내 군 생활을 통째로 관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다수의 일들이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이고 강제적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대장님이 하셨던 그 말을 떠올린다. 지금 나에겐 하찮은 일들이 누군가에겐 책임감이 될 수 있으리란 것을.

나의 군 생활에서 남은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훈련소에서의 내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해주셨던 소대장님과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