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뉴스,신문을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보도, 기사들만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도 어느정도 알게 되면서 뉴스에 무엇이 나오는지 알게 되었다. 정치인들이 왜, 어떤 비리를 저지르는지, 주변국들과 외교를 어떻게 하는지, 경제가 왜 불황인지....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 같지도 않다. 때로는 차라리 모르는게 더 나은 때도 있다. 어린 시절엔 뉴스 방송 시간에 TV애니메이션이나 보면서 히히덕거렸는데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정신의 성숙함이 곧 정신의 병듦을 가져와버렸다.
나는 학교로 통학할 때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한번 갈 때 약 1시간10분 정도 소요되니 왕복한다면 약 2시간 30분을 버스에서 지내는 셈이다. 2시간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때로는 잠도 자고, 책도 읽고, 시험시간에는 공부도 해보았다. 하지만 많은 경험끝에 알아낸 가장 생산적인 활동은 바로 '바깥 풍경 보기'이다. 언뜻 들으면 '생산적인'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시간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멍때린 채로 바깥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있자면 하루의 묵은 피로가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그림같은 절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평범한 아파트단지, 백화점, 지하철역 등을 지나간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는다. 마음의 상처이든, 신체의 상처이든 그렇다. 신체의 상처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아물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만이 능사가 아니다. 친구들 중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도 얼마 안 지나서 훌훌 털어버리고 원래처럼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만 보면 참 부럽다. 나는 하찮고 자잘한 굴곡에도 초연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상처였지만, 그 상처들이 나를 잠식하면서 나의 환부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 커져가는 상처를 보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도 처음에는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아물지 않고, 흉터도 남았다. 이제는 그 상처를 덮어놓고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너무 칼칼하다. 쾌청한 공기 속에서 시원하게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싶다.
최근 뉴스라인 상단에는 항상 '미투 운동'이 올라가있다. 연예인,예술인,정치인들 할 것 없이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 유명세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고 목을 졸라왔던 것이다. 모두 존경받고 우러러보았던 유명인들이었는데 성범죄의 가해자였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유명인도 별거 없구나' 하는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을 유린하는 세태가 만연히 퍼져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 한두 사람이 용기내어 미투 운동을 전개한 결과, 다른 가해자들도 우수수 뿌리 뽑히듯이 파헤쳐지고있다. 새삼 소수의 용기가 사회를 바꿀만한 저력이 있음을 느꼈다. 우리 사회의 커다란 암덩어리 같았던 문제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은 ..
나의 전공은 컴퓨터공학(정확히는 소프트웨어)으로, 극도로 엄밀하고 형식적이고 딱딱한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때문에 이를 배우는 나의 성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 분야를 공부하면서 나 자신이 경직되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런 나에게 교양과목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21학점 중에서 겨우 3학점 뿐이지만, 나의 전공을 벗어난 분야로의 소박한 일탈이 유일하게 허용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작정하고 나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양과목을 듣기로 했다. 예를 들면, 철학이나 심리학같은 인문학 과목들이 그것이다. 겨우 교양수준의 인문학이기는 하더라도 여러 분야를 최대한 많이 접해보면서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작은 야심이 있다.